욕을 '먹었기' 때문에 더 '맛나게' 먹었다 逆說
싫어도 해야 하는 행위 '노력正當化'로 합리화
입학철 신고식도 더 친밀해지려는 의식의 일종
일탈행위로 까지 가서는 안 되는 襟度가 있어야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전국 여러 도시에 소위 ‘욕쟁이 할머니 음식집’이 있다. 그리고 이 집의 음식이 맛이 있다고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히 잘 못한 일이 없는데 욕을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기분이 나쁜 곳은 다시는 찾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렇다면 이들 음식집은 기분 나쁜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찾아가서 먹어야 할 만큼 정말 음식맛이 뛰어난 것인가?
사람의 마음에는 심리학에서 소위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일치되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공부를 하기 싫은 학생은 당연히 공부를 안 할 것이다. 또는 같은 과의 여학생을 사랑하는 남학생은 당연히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태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예의바르게 행동해야만 하고, 회사에 가기 싫어도 매일 지각하기 않고 제 시간에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태도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 그 행동을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귀인(歸因)할 수 있다면, 마음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태도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는데도 그 원인을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면, 우리는 긴장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이런 상태에 놓이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불편한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의 하나가 태도를 이미 한 행동에 맞추어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즐기던 남성이 자신이 몰래 흠모하는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남성을 싫어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후 담배를 끊는 행동을 한 경우다. 이 경우, 지금까지 담배 피던 남성이 금연을 하는 것은 태도와 행동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몰래 흠모하는 여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금연을 했다는 것을 공개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런 경우, 이 남성은 마치 금연의 효과를 처음 접한 사람처럼 흡연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금연 행동과 일치하도록 한다.
‘인지부조화’가 잘 일어나는 상황 중의 하나가, 노력에 걸맞지 않는 결과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노력을 많이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한 것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당연히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이럴 경우, 부조화를 감소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이 노력 중 제일 많이 사용하는 책략이 ‘노력(努力)의 정당화(正當化)’다. 즉, 자신이 들인 노력이 정당하다고 느끼기 위해 얻은 목표를 더욱 긍정적으로 느끼려고 한다.
똑같은 음식을 한 사람은 쉽게 얻었고, 또 다른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면 누가 더 음식이 맛있다고 느낄까? 정답은 어렵게 얻은 사람이다. 쉽게 음식을 얻은 사람은 음식이 맛이 별로 없더라도 크게 손해 보는 것은 없다. 이래저래 쉽게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게 음식을 얻은 사람은 만약 음식이 맛이 없다면, 맛없는 음식을 얻기 위해 힘들게 노력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속았다는 느낌과 황당한 마음까지 들것이다. 따라서 음식이 맛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런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당연한 수고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즐거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욕쟁이 할머니를 찾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이제는 “욕을 먹으면서 음식이 맛이 있을까?”가 아니라 “욕을 먹으니까 음식이 맛이 있구나!”로 발상(發想)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현상들이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옛 어른들의 혼례에 ‘신랑(新郞)달기’라는 것이 있었다. 신부 집에서 신부의 이웃 젊은이들이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며 놀면서 이때 좋은 음식을 대접받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으며 즐기는 관습을 말한다. 왜 신랑의 발바닥을 때려서 고통을 주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력을 정당화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잘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밑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즉, 신부를 얻기 위해 발바닥을 맞는 고통을 감수했다면, 그 신부가 더욱 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터득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랑의 친구들이 신부집에 함을 팔러가서 쉽게 내주지 않고 애를 먹이다 주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주위의 반대와 많은 장애를 이기고 결혼한 부부가 상대방을 더욱 더 애틋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잘 사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 마찬가지다.
입학철이 되자 각 학교마다 신입생들을 괴롭히는 일명 ‘신고식(申告式)’이라는 것을 한다고 법석을 떤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신입생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술을 마시기를 원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남녀신입생들에서 많은 양의 술을 먹게 해서 토하거나 힘들게 한다든지, 수줍음을 무릅쓰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소속을 말하게 하여 당황케 한다든지, 심지어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기합을 주어 모멸감을 주는 곳도 있다. 이런 신고식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교에서도 ‘fraternity(남학생친목동아리)’나 ‘sorority(여학생친목동아리)’에서 신입생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곳이 많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신고식의 원래 의도는 이 괴롭고 불편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더 빨리 친밀해지려는 것이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 아직 학교생활의 여러 면에서 서먹서먹하고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 대해 큰 애정이 없을 때, 빨리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 다니는 것에 긍지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고생스런 신고식을 치르고 힘들게 얻은 결과는 더욱더 값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신랑을 괴롭히는 행위나 함을 파는 행동이 도를 넘어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일탈행동으로까지 치닫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다. 그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정에서 상대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지나치면 처음에 의도했던 결과를 얻을 수도 없다. 그리고 본래의 좋은 의도가 퇴색되고, 행위자의 저급한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그 행태는 저질스러워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된다. 아무리 욕쟁이 할머니의 음식이 맛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욕이 구수하고 견딜 수 있어야 음식맛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지, 욕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내주어도 불쾌해서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욕쟁이 할아버지집’이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은 인지부조화에도 통하는 것이어서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과 희생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 차라리 결과의 가치를 감소시키고 포기하는 쪽으로 인지부조화를 해결한다. 신고식을 하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쉽고 빨리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은 ‘노력의 정당화’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방법을 달리하면서 서로 즐거울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지성인이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