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이원(梨園)에서 예수의 생애를 생각하며 발레를 본다는 것은 성경 한권 읽는 것 이상의 행복이다. 해마다 정신적 부유감과 교훈적 실제를 체험하며 위안을 얻고, 내적으로 좌표적 각오를 다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비극적 시기의 침울을 극복하고, 극기하는 모습을 발레로 보여 주는 것은 나눔, 배려, 헌신, 도전, 사랑, 정의 등의 이화학원의 실천 덕목이다.
프롤로그, 2막 9장(1막: 6장, 2막: 3장), 에필로그로 구성된 『발레로 만나는 메시아』는 제1막: 예수 탄생의 예언과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전까지의 삶, 제2막: 심문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과 죽음 이후 부활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평화의 갈색, 수난의 적색, 부활의 백색과 호박색은 정겨운 마을, 로마군의 진영, 골고다의 언덕을 순차적으로 배색한다.
헨델의 ‘메시아 서곡’에서 시작, ‘할렐루야‘ 합창으로 종결된 이 작품은 봉헌의 예(禮)를 갖춘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달빛보다 빛나고, 여름 햇살보다 뜨거운 여인 신은경이 직조한 발레 ‘메시아’는 꿈을 확대한 지나친 낭만이나 이슈적 과장을 동반한 모던 발레의 난장을 경계한다. 그녀는 질적 우수성으로 정도를 견지하며, 꽉 들어찬 구성이 자연스러움을 보완하고 있다.
겸양과 곧은 심성으로 신은경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비주얼이 각인될 스토리를 재구성하고, 유기적 관계로 조명, 음악, 세트, 의상 등 기술적 문제점들을 해결한다. 선후배 사이인 유능 발레리나들의 테크닉 간의 기능적 조화를 배려, 타 장르의 예술과 협력하면서 코리언 발레리나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교육적 작품들을 만들어 내어왔다.
헨델, 쇼스타코비치, 베를리오즈, 모차르트의 음악이 정제되어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적절히 어울리면서 포진한 사운드, 분위기에 걸맞은 빛(조명, 영상), 현란한 이화 앙상블의 발레 연기가 만들어 내는 ‘사이트(sight)와 사운드(sound)’는 비주얼이 돋보이는 경탄의 대상이다. 저예산으로 최고의 기량으로 끌어올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신은경의 능력이다.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었던 발레를 높은 곳을 향하여 낮은 곳으로 임한 사람들에게 선사한 신은경은 관객 하나하나에게 느낌을 불어 넣어 훈훈한 마음을 풍성하게 불어넣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된 이날 공연에서 구사된 발레 용어들이 모두 빛났다. 여성들만으로 꾸려진 발레, 남성역을 한 발레리나, 다중 역의 발레라나 모두 세기(細技)의 완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월드컵 축구팀의 본선 진출과 같은 힘든 과정을 거친 이 작품은 완전한 객관성, 자명한 도덕관 고양, 비극적 슬픔을 침화시켜 발레의 우수성이 돋보이게 함은 물론 순교에 이은 부활 등 종교적 승화를 통한 ‘사랑의 진정한 원형’을 구현한다. 신은경의 다양한 발레작들은 원형과 창작 사이에서 조용한 진화를 계속해왔다. 정중동, 신은경에게 필요한 표현이다.
강민지(예수), 김정은(마리아), 이은미(막달라 마리아), 이한선(사탄), 이민경(사탄), 고현정(대제사장), 최정인(유다, 빌라도), 이지혜(빌라도처), 윤정민(가야바), 이규원(군사장), 김다애(베드로),정찬미(용서받은 여인), 이민경(우물가 여인), 이가람(우물가 여인), 심소연(천사장), 유지수(천사장), 군무의 김주연에서 한지연에 이르는 연기는 상위 발레로의 성장 전형을 제시하였다.
『발레로 만나는 메시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이야기를 잘 갈무리된 표현으로 엮은 신은경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신’을 무대로 불러 현현(顯現)시키는 행위의 ‘메시아적 목가’는 라일락 향기를 바람에 띄우는 ‘부드러운 손길’의 분신이다. 성경에서 연상되는 모든 것들을 보편적 상징으로 완벽하게 처리한 안무가에게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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