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소극장 대표 손병하(연출가, 음악감독)는 젊은 실험 작가들에게 공연의 기회, 관객들에겐 소통의 기회를 주고자 노력한다. 제작자로서의 그의 역할, “좋은 작가는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환경으로 키운다”며 훌륭한 안무가, 연출가를 키울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미란 안무의 『조용한 방, Silent Room』은 장미란의 안무관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을 차용한 그녀의 작품은 인간 심리의 ‘해저 삼만리’를 천연덕스럽게 넘어간다. 여성 이인무인 이 작품은 깊은 집중과 춤에 대한 해독력을 요구하는 행위적 상징들은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극적 구성으로 가시적 춤을 생략한 상징들은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플래시(전등)을 든 여인(이정화), 서서히 자신의 본질(누워있는 장미란)에게 접근하며 한다. 진실에게 다가가는 길은 치장이 없다. 음악은 배제되고 인간이 내뱉는 원시의 사운드만 존재한다. 울부짖음으로 비치는 웃음, 차가운 현실에 대한 저돌적 표현이다. 정신병원 분위기, 야수 같은 몸짓, 한 몸이 끝까지 뒹구는 여인들, 안무가는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은실 안무의 『서브웨이 다이어리, Subway Diary』는 잃어버린 방향성을 주제로 한다. 모티브는 지하철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불안감, 목적지와 내면의 아우성들이 조우한다. 재생과 반복 속에 긴장, 설렘, 무감각, 단절, 불안 등의 상징들이 스쳐간다. 다시 찾아지는 평정심, 춤의 주인공의 하나, 음악을 포함한 사운드는 부지런히 움직임에 부합되는 리듬감을 창출한다.
감정의 변화를 동작화한 이 작품은 ‘발견, 반복된 방향성을 잃은 삶의 행위들, 정체-욕심과 열정사이, 갈등 · 불안-소리 없는 아우성, 다시 찾다’의 갈래를 갖는다. 지하철처럼 빠르게 달리는 현대의 불확실성 속에 내가 쳐진 듯 한 사색의 시간들 속에 배운 겸손, ‘인식되지 못함 - 인식되어짐 – 쏟아짐’에 소통과 단절, 불안에 대한 상징들이 빼곡히 들어선다.
순가쁘게 살아온 이은실, 양수진의 이인무는 자각, 가까운 주변을 챙기지 못한 질주로 내게 남은 움직임의 감각만 남은 자신,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열정 사이의 고뇌, 좌절감과 배신에서 나를 닫음으로써 오는 불안감과 내안에서 우는 바람, 홀로서기를 위한 모색은 나로부터 온다는 깨닫기까지의 과정의 춤을 굶주린 이리의 먹잇감으로 삼는다.
이정화 안무의 『흠없이... 척, Without Scar... Pretending』는 ‘ 버리는 방법도/가는 길도 잃은 채/멍하니 반만 걸친 채/불안하게 ’ 놓인 듯 하지만 묵묵히, 천천히,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춤 길’을 가는 이정화의 자신감이 표현된 독무이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이 작품은 푹 라이트의 확장, 역광의 조명 그 빛 사이로 느린 걸음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종료된다. 꿈꾸는 것 또는 이상으로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괴리감, 흠이라는 것을 덮고 걸쳐진 모습들을 옷이라는 오브제와 신체를 이용하여 표현하였고, 자연소리를 통해 숲의 이미지를 가져와 의도하여 행동한 것이 아닌 마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행위로 포장, 최소한의 행위조차 감싸는 가장 큰 이상의 오브제로 사용하여 그리고 있다.
마음의 유동, 인간의 가식적인 행동을 힐난하는 느긋한 관조, 상처투성이의 인간들이 꾸며 놓은 세상을 관객들은 같이 들여다본다. 이정화의 ‘몸 시’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극한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의식의 상층부를 점유하고 있다.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고, 그것을 상상케하는 조급증을 만들어 낸다. 그녀의 의식의 숲은 깊고, 신비롭지만 울분이 감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