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발레에 대한 환상을 차단하고 현대발레의 농밀한 맛을 선사한 이 작품은 건강한 덴마크의 체조를 연상시킨다. 즐거움으로 채운 유학생활 이후, 비움과 버림을 아는 지혜, 어울림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 분위기를 창출하는 안무능력 등 그녀의 내면 풍경은 절박함 속에서도 여유롭다. 춤에 대한 정토(淨土)의 일면, 『10개의 막대를 위한 구성』은 새 지평을 연다.
김순정은 봉을 이용하는 발레를 선택,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 균형미를 강조한다. 두개의 봉을 잡고 있는 남녀, 작용과 반작용, 봉의 움직임으로 마음의 기류를 전하는 그들은 수직과 수평, 합일과 해체의 몸짓으로 힘을 분배하며 남녀 간의 절대 균형, 인종간의 이해, 우주의 평화를 기원한다. 고수들(김순정, 윤민석)의 연기는 다름의 가치를 입증한다.
발레에 대한 새로운 인식, 구성과 전개, 자신의 개성 찾기에서 상호 위로와 격려를 하는 이 발레는 ‘지금’의 한국발레의 상상력 빈곤과 안일함을 고민하는 일면으로 비추어진다. 그녀의 발레 양상(樣相)의 중심에 부드러운 움직임과 차가운 이성이 자리 잡고 있다. 김순정 발레에 대한 옹호는 사운드의 불협화음에 완벽한 조형을 찾아가는 고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캐논형식으로 움직이는 부분에서 춤꾼들은 더욱 더 집중해서 움직이고 침착함을 유지해야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움직임과 호흡 속에서 체력과 정신력의 고갈을 극복해야한다. 보이는 것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무용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우리가 간과하는 발레의 열린 영역, 효율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 발레의 미학이다.
김순정의 진실을 보여주는 동력과 완전한 몰입에서 오는 기의 흐름은 현대발레가 감추고자하는 위선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가 견지하는 지성의 고수들이 벌이는 발레의 대나무 숲, 그 고고한 대나무 위의 결투는 겸손과 자기낮춤에서 온다. 정형으로 서정감의 극치를 맛보게 하는 발레에 대한 인식변화 시도는 작은 울림으로 미래 발레에 대한 희망을 불러온다.
후반부, 스승의 정신적 흐름을 이어받은 열 명의 젊은 발레리나들과의 접속, 대부분 수직으로 보여준 동작들은 간결한 바이올린과 여린 피아노음이 선도하는 리듬에 맞추어 발레교습의 풍경을 보는 듯 한 기대감을 불러온다. 사용된 음악, 알바 노토(Alva Noto)의 <유니렉, Uni Rec>과 알보 파트(Arvo Part)의 <쁘라뜨레, Fratres>는 춤 흐름 감지에 도움이 된다.
김순정, 노련한 자신의 기량에 풋풋한 젊은 피로 수혈한 각고의 노력은 진전의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현재적 삶을 고민하며 자신의 춤 개성을 보인 그녀는 늘 전사적 용기와 탐색의 일선에 있다. 몸의 변증법으로 환상을 현실과 접목시키고, 성실함으로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구축하며, 생명의 춤을 추는 그녀의 진경(進景)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