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 ‘사람들은 말들을 모른다 /그 많던 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초록을 밟으며 달리던 완강한 말굽과 바람에 날리던 갈기/힘찬 박동의 숨소리까지/지축을 울리며 화염을 향해 달려가던/그 많던 말들이 어디로 가벼렸는지/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자신들이 그 많던 말들의 주인이었고/그 말들 속에 섞여 초록들판에서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큰소리로 울던 푸른 말들이었음을 까아맣게 잊었다’, 디지털 숲에서 출구를 잃은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말은 고향이다. 향수이며 되돌릴 수 없는 잃어버린 꿈이다. 질주 본능을 지닌 푸른 말들이 달릴 수 있는 초원은 미미하다. 유토피아, 그 피안의 공간은 죽어야만 가능하다. 어지럽게 흩어진 오선지처럼 우리사회는 인간이라 이름할 수 없는 ‘잡것’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동물의 왕국에서의 ‘쫓고 도망가기'를 비유한다. 안무가는 심리학의 다양한 범주에서 ‘가학’과 ‘피학’을 들추어내기도 하고, 아바타적 권력의 폐해를 은유적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안무가 이해준이 선택한 일련의 심리학적 춤의 범주에는 억압된 욕망을 풀어내는 주술적 희극성이 항존한다. 잔걸음, 노래, 웃음과 같은 낯선 풍경의 디테일들과 수용소 분위기를 차용한 군대식 용어, 언어실험 같은 생소한 기억 인자들이 춤에 투입된다. 복합구성 속의 난해함을 해독하기 위해서 시(詩)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을 음미해야한다. 안무가의 독창적 상상; 단절을 부르는 절대 소외, ‘부당감금’같은 유사상황은 주변에 산적해 있다.
안무가는 ‘현대춤의 현대성’으로 복잡한 인간 심리 구조의 상층부를 해부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춤의 답보를 털고, 아픈 기억을 씻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안무작을 통해 소통과 협업의 춤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입증시킨다. 이 작품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신의 편견을 희생자에게 투영할 만큼 어리석은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춤 작업은 독자적 춤기교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그 존재가치가 있다.
이해준은 구성과 무대 연출에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는 보통 상위 춤철학의 실체를 간결하게 구성해낸다. 난해한 시제(詩題)를 춤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면 구성과 조명의 분할화를 통해 네오탄쯔 메서드를 활용한다. 그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서로에게 섬처럼 우뚝 선 소통단절에서 아울렛을 찾는 방식과 방법론을 추구하고 있다. 강박관념과 우울을 털어내는 독특한 양식과 정신분석학을 원용한다.
이해준, 강인한 투쟁력으로 현대무용의 변화무쌍한 춤 전투에서 살아남을 예술가이다. 그는 휘몰아치는 강풍 속에서도 평정심을 지키는 안무가로 의리의 소중함과 배려의 미덕을 존중한다. 위대한 철학자, 고수, 장인의 기질은 지극히 단순하다. 엄청난 분량의 연습으로 쉽게 보이는 집중과 고난이도의 기량을 보여준 다는 점이다. 공연시간 내에 시대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말,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 은 우리를 깨우칠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