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44회)] 주관적 진실
"유병언 시신 국과수 발표 못 믿겠다" 국민 58% 답변
해명하면 할수록 "뭔가 숨기고 있다" 의구심만 무성
자기만의 준거 틀로 해석…음모론은 불신 먹고 자라
원효의 一切唯心造‧이솝 양치기 소년 교훈 되새겨야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소위 ‘유병언 사망사건’의 진위에 대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미심쩍어 하며 설왕설래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얼미터가 지난 7월25일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씨라는 국립과학연구소 발표를 못 믿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57.7%였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정부 당국이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 국과수 담당자들은 매우 당혹스럽고 안타까울 것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사실이라고 당국이 해명하면 할수록 일각에서는 ‘뭔가 감추는 것이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해명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니 말이다.
이런 현상은 비록 세간에 큰 관심을 일으키는 사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도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아무리 내가 사실이라고 열심히 설명해도 듣는 사람은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진실을 왜곡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런 경우를 당해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객관적 사실(事實)’과 ‘주관적 진실(眞實)’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 사실을 자신의 주관적 이해의 틀에 맞추어 해석할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을 다른 사람에서 있는 그대로 사진 찍듯이 전달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사실을 이해하는 나름대로의 주관적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 사이에는 ‘해석(解釋)’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이 있다. 이 준거틀에 맞추어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응을 한다. 이 준거틀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준거틀을 가지고 동일한 사건을 해석하고 경험한다. 하지만 같은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유사한 준거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대화하고 공감(共感)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삶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객관적 사실을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원효대사의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훈이 이 같은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다. 동일한 현상이나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마음먹기)에 따라 대응하는 행동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국내 최고의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를 많은 국민이 믿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해답을 하기 위해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동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들에서 양을 치는 소년이 심심해서 거짓말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마음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소년의 거짓말에 속은 걸 알고 야단을 친다. 자신의 거짓말에 동네 어른들이 속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 소년은 또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이 달려온다. 그리고는 또 속은 것을 알고 헛되이 돌아간다.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년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어른들은 그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도우러 가지 않았다. 마을의 모든 양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
사실은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지만(객관적 사실)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듣고(전달 내용) 늑대가 나타났다고 믿고(주관적 해석) 양을 지키려고 달려 나온다(대응행동). 하지만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돌아간다(경험). 처음에는 전달 내용을 믿고 그에 대응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과 전달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고 양치기소년을 혼낸다. 즉 객관적 사실과 전달 내용이 동일해지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자(경험의 반복) 주민들은 객관적 사실과 전달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경험에 근거해 ‘소년은 거짓말쟁이(전달자)’라는 준거틀을 형성한다. 그 결과 전달 내용뿐만 아니라 전달자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는 전달자가 전하는 모든 내용을 믿지 않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여우가 나타난 객관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과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이나 일상적인 소소한 사건이나 불신이 싹트는 원인과 과정은 동일하다. 만일 남편이 전달하는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면 아내는 남편이 거짓말을 잘 한다는 준거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남편이 사실을 전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믿지 못하게 되고 남편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부부간의 불신(不信)’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맺게 된다.

전달되는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전달자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객관적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재산과 인력이 있고 옆에서 ‘신(神)’처럼 떠받드는 측근이 도와주고 있어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사람으로 믿은 사람이 홀로 노숙자 차림으로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허망한 사실을 쉽게 믿을 수는 없다. 소위 “상식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는 마음이 생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은 여러 경로의 해석을 통해 ‘주관적 진실’이 된다. 해석도 주관적인 것이므로 왕왕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고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난다. 이런 오해와 갈등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진실한 소통’을 하는 것이다. 전달자를 신뢰하게 되면 전달 내용이 설사 자신의 결론에 맞지 않더라도 해석을 변화시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을 일치시킨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이든, 정부와 국민 간의 관계이든,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이든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원칙은 동일하다. 평소에 서로 진실된 관계를 맺으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 사이의 불일치는 큰 갈등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믿지 못한다고 불평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평소에 자신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이고 진실된 내용을 전달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은 불신을 먹으며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