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국과수 발표 못 믿겠다" 국민 58% 답변
해명하면 할수록 "뭔가 숨기고 있다" 의구심만 무성
자기만의 준거 틀로 해석…음모론은 불신 먹고 자라
원효의 一切唯心造‧이솝 양치기 소년 교훈 되새겨야
이런 현상은 비록 세간에 큰 관심을 일으키는 사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도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아무리 내가 사실이라고 열심히 설명해도 듣는 사람은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진실을 왜곡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런 경우를 당해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의처증(疑妻症)’ 이라는 마음의 병이 있다. 문자 그대로 부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고 의심하는 병이다. 한 부인이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점원에게 채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에도 아내가 부정한 행동을 한다고 의심하고 있던 남편이 이 현장을 목격하고 부인이 점원과 부정한 행동을 하는 현장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 증상이 병인 것은 객관적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남편이 아내의 특정 행동을 부정하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부정한 아내’는 주관적 진실이 된다. 즉 객관적 사실과 남편이 믿는 주관적 진실이 서로 다른 것이다. 만약 아내가 실제로 그릇된 행실을 했고 남편이 그렇게 믿는다면 이것은 병이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이 있다. 이 준거틀에 맞추어 현실을 이해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응을 한다. 이 준거틀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준거틀을 가지고 동일한 사건을 해석하고 경험한다. 하지만 같은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유사한 준거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대화하고 공감(共感)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삶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객관적 사실을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원효대사의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훈이 이 같은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다. 동일한 현상이나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정적으로 보는지(마음먹기)에 따라 대응하는 행동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국내 최고의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를 많은 국민이 믿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해답을 하기 위해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동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들에서 양을 치는 소년이 심심해서 거짓말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다. 마음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소년의 거짓말에 속은 걸 알고 야단을 친다. 자신의 거짓말에 동네 어른들이 속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 소년은 또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이 달려온다. 그리고는 또 속은 것을 알고 헛되이 돌아간다.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년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어른들은 그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도우러 가지 않았다. 마을의 모든 양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
사실은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지만(객관적 사실)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듣고(전달 내용) 늑대가 나타났다고 믿고(주관적 해석) 양을 지키려고 달려 나온다(대응행동). 하지만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돌아간다(경험). 처음에는 전달 내용을 믿고 그에 대응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과 전달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고 양치기소년을 혼낸다. 즉 객관적 사실과 전달 내용이 동일해지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자(경험의 반복) 주민들은 객관적 사실과 전달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경험에 근거해 ‘소년은 거짓말쟁이(전달자)’라는 준거틀을 형성한다. 그 결과 전달 내용뿐만 아니라 전달자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는 전달자가 전하는 모든 내용을 믿지 않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여우가 나타난 객관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과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이나 일상적인 소소한 사건이나 불신이 싹트는 원인과 과정은 동일하다. 만일 남편이 전달하는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면 아내는 남편이 거짓말을 잘 한다는 준거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남편이 사실을 전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믿지 못하게 되고 남편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부부간의 불신(不信)’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맺게 된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이 다를 때 ‘음모론’이 싹트는 또 하나의 경우는 전달되는 내용이 자신의 주관적 해석과 지나치게 다를 경우다. 대개의 경우, 전달 내용이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경우에는 자신의 해석을 수정하여 전달되는 내용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이 일치할 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해석과 지나치게 다를 경우 전달된 내용이 객관적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있다고 여겨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지 못할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만들어내게 된다.
전달되는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전달자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객관적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재산과 인력이 있고 옆에서 ‘신(神)’처럼 떠받드는 측근이 도와주고 있어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사람으로 믿은 사람이 홀로 노숙자 차림으로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허망한 사실을 쉽게 믿을 수는 없다. 소위 “상식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는 마음이 생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은 여러 경로의 해석을 통해 ‘주관적 진실’이 된다. 해석도 주관적인 것이므로 왕왕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고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난다. 이런 오해와 갈등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진실한 소통’을 하는 것이다. 전달자를 신뢰하게 되면 전달 내용이 설사 자신의 결론에 맞지 않더라도 해석을 변화시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을 일치시킨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이든, 정부와 국민 간의 관계이든,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이든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원칙은 동일하다. 평소에 서로 진실된 관계를 맺으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진실 사이의 불일치는 큰 갈등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믿지 못한다고 불평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평소에 자신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이고 진실된 내용을 전달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은 불신을 먹으며 자란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