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도서 아버지는 항상 무섭고 두려운 '너무 먼 당신'
어머니에 의존하다 '어른'이 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군대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소주병 기울이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
"나도 이제 진짜 남자다. 믿지 오빠?"라 말할 수 있는 원천
왜 대한민국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젊은 시절 언젠가는 입대를 해야 한다. 아마도 모든 남자가 공통적으로 하는 경험이 학교생활과 군대생활 빼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간다. 직업이 다양한 남자들이 모이면 공통적인 화제는 군대밖에 없으니까! 군대 이야기보다 덜 하기는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시험 보다가 컨닝한 모험담이나 사소한 일탈행동을 하다가 담임선생님에게 들켜서 매를 맞던 일, 선배에게 대들다가 학교 뒷산으로 끌려가 얻어맞던 일 등은 언제 이야기해도 철없던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남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심리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단지 모이기는 했는데 별다른 이야기 거리는 없고 공통된 화제를 찾다보니 그것이 군대 경험인 것뿐일까? 끊임없이 장소와 참가자와 관계없이 이야기하는 데는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군대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의 가족제도는 형식적으로는 ‘가부장제(家父長制)’이다. 아버지가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지배·통솔권을 갖는 가족형태라는 뜻이다. 이런 제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父子)’이 가족의 중심축이 된다. 당연히 대(代)를 잇는 것이 중요하고 아들이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가족제도에서 부자관계는 감정 면에서 보면 이중적이다. 집안의 대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은 긴밀한 정서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계는 그렇게 친밀하지 않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가까이 하기에는 멀고 두려운 존재이다. 눈만 마주쳐도 주눅이 들고, ‘아버지가 찾으신다’는 전갈을 받으면 먼저 혹시 ‘잘못한 일이 있어서 꾸지람을 하시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하게 되는 존재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친밀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와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정서적 유대관계는 어머니와 이루어진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아들은 특별한 존재이다. 가부장제에서는 시집간 여자의 제일 중요한 책무는 아들을 낳아 시댁의 혈통을 이어주는 것이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죄인’된 심정으로 살아가면서 계속 자식을 생산한다. ‘십자매’ ‘팔공주’ 등이 말이 회자되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거의 필사적으로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것이다.
아들을 낳는 순간에야 비로소 며느리로서의 막중한 임무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압박 속에서 얻은 아들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하지만 아들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편과 아내(夫婦)’의 관계는 항상 부자관계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부부관계에서 애틋한 이성간의 친밀한 유대가 중요하다는 정서적 측면의 인식보다는 아들을 생산하는 수단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문화에서 부부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그 자체로 조장되기보다는 오히려 아들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관계가 아닌 정서적 관계는 억제되는 경향마저 띠게 된다.
이런 문화에서 남편은 집안의 부인과의 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한 이성간의 정서적 만족을 집밖의 여자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소위 ‘기생(妓生)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도시의 밤거리를 휘황찬란하게 비추는 ‘유흥문화’는 이 문화적 특성에서 발달한 것이다. 지금도 군대나 회사 등 다양한 조직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소위 ‘성희롱’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이 문화적 특성이 원인이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집안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채워지지 않은 이성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집안으로 생활공간이 제한된 어머니는 당연히 집안의 남자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밀하게 지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되기까지 하는 관계를 떳떳이 맺을 수 있는 집안의 남자는 누군가? 아들이다. 가문을 잇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아들을 온갖 정성과 희생을 다해 키우는 것은 어머니의 도리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이 거룩한 사랑에 대해 무언가 다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삐딱한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을까? 어머니에게 아들은 자식이자 영원한 ‘연인(戀人)’이다. ‘고부(姑婦)간의 갈등’의 발단도 여기에 있다.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듯이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는 어머니는 아들에게는 삶의 기반(基盤)이자 언제든 돌아가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심리적 고향(故鄕)이다. 모든 것을 미리 알아서 해주는 어머니의 품에서 성장하는 아들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깊은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이 관계는 아름다운 관계이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 관계가 지나치면 아들은 어머니에게 정서적으로 의존적인 미성숙한 성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소위 ‘마마보이’로 성장하게 된다. 사실 한국 남성에게서는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독립되지 못하고 ‘미분리(未分離)’된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것이 부부간의 갈등의 심리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부인에게 “나를 어머니처럼 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나는 어머니가 아니고 부인이다”라고 확인시켜 준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즐거운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알아서 해 주던 것을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가능한 한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이 딜레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딜레마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군입대’이다. 20세 초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독립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군대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는 ‘군대 이상의 심리적 의미’를 갖는다. 군대는 어머니로부터의 심리적‧물리적 독립을 훈련할 수 있는 ‘사회교육의 장(場)’이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한 남자로서 같은 남자들끼리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받은 곳,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처음 경험하는 곳,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곳,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기만 한 그 경험을 오늘도 대한민국 남자들은 같은 남자들끼리 소주를 기울이면서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 경험을 자랑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홀로 설 수 있는 남자다. 오빠 믿지?”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