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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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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46회)]군대는 기숙사다

싫지만 책무 완수하는 책임감…


상하관계 등 사회생활 미리 경험


가정에서 배울 수 없는 것 많아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규모가 큰 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분 중 한 분의 꿈이 전교생을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4년은 아니라도 최소한 1년만이라도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그 분의 바람이었다. 그 분의 지론은 간단했다. 요즘에는 형제·자매 없이 혼자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가정에서 단체 생활이나 조직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재학 중에라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단체 생활과 조직 생활을 하는 훈련을 해야 사회에 나와서 잘 적응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대학교 기숙사의 사감장을 2년간 지낸 적이 있다. 학교 주위에 있는 자취방이나 하숙집보다 시설도 좋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려는 지원자가 많았다. 또 지방 학생들 중에는 기숙사에 자녀를 맡기면 안심이 된다고 부모가 강하게 권유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미 1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기숙사도 변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도권에 집이 있는 학생을 제외하고 지방 출신 학생들 중에 900여명이 함께 생활하였다. 선발된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정한 규칙에 저촉되지 않는 한 최소한 1년 동안 함께 생활을 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그 중에서 또 반만이 선발되어 1년을 더 생활한다. 한 방에는 2학년 학생인 ‘방장(房長)’이 1명, 그리고 1학년 학생인 소위 ‘방졸(房卒)’이 2명이 함께 생활한다. 함께 1년을 생활한 후 2명의 1학년 학생 중 한 명만이 2학년 때에도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1학년 학생 중 누가 기숙사에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방장의 평가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장은 ‘원만한 대인관계’와 ‘기숙사 규칙 준수’를 중점으로 평가하였다. 2학년 때도 기숙사 생활을 원하는 1학년 학생들은 방졸들끼리 뿐만 아니라 방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2학년 학생 중 극히 일부가 3학년 때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사감교수를 도와 기숙사 운영에 참여하는 소위 ‘간부사생(幹部舍生)’이 된다.

▲지난8월18일서울여의도국회도서관소회의실에서새누리당정병국,송영근,홍철호의원주최로열린2014병영문화개선토론회에서장병들이참석자들의발언을경청하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8월18일서울여의도국회도서관소회의실에서새누리당정병국,송영근,홍철호의원주최로열린2014병영문화개선토론회에서장병들이참석자들의발언을경청하고있다.
필자는 사감장 경험을 통해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기를 바랐던 총장의 의중(意中)을 십분 헤아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온 학생들은 처음 1학기 동안에는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자신의 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필요 없이 혼자 편하게 생활하던 습성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상급생이 있는 방에서 3명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적응을 못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1학기가 끝난 후 자진해서 기숙사를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1학년을 마칠 즈음에는 학생들의 행동이 입사 초기하고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처음에는 조직 생활에 낯설어 하던 학생들이 오히려 기숙사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방원(房員)’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물론이고 식사 및 취침 시간의 준수와 같은 단체 생활의 규칙에도 자발적으로 협조하였다. 그 외 기숙사의 각종 행사와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같은 사생들끼리의 관계도 좋아졌다. 오히려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 900여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자치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험을 통해 하숙이나 자취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했다. 거의 대부분의 1학년 학생들이 2학년 때도 계속 기숙사 생활을 하기 원하는 것을 보면 1년 동안의 단체 생활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남성이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다 20대 초반에 2년 미만의 군대 생활을 한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대하는 것이지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군대 생활은 아무 의미도 보람도 없는 그야말로 허송세월(虛送歲月)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군대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볼 때 입대하는 당사자들이나 그 부모들이 걱정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남자가 일정 기간 동안 군복무를 해야 하는 ‘징병제(徵兵制)’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군모집 제도가 바뀌기 전에는 개개인의 선호 유무에 관계없이 군대 생활을 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함께 고려하면 군생활에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숙사에 입사하는 학생들처럼 군입대를 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도 가정에서는 독방에서 자유스럽게 자신이 세운 계획과 일정에 따라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생활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한 가정의 자녀수가 적기 때문에 형과 함께 생활하면서 간섭과 명령을 듣는 경험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리 시설이 좋다고 해도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불편할 것이다.

▲기숙사는혼자생활하던사람에게공동체생활을익혀주는역할을한다.서울시의회교육위원들이서울강동구고덕동배재고등학교를찾아교원들과함께기숙사시설을둘러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기숙사는혼자생활하던사람에게공동체생활을익혀주는역할을한다.서울시의회교육위원들이서울강동구고덕동배재고등학교를찾아교원들과함께기숙사시설을둘러보고있다.
“군대에서 요령만 배웠다”라는 등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어른이 된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어느 사건이나 상황도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없다.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경우도 물론 없다. 그렇다면 군대생활이 주는 긍정적 측면은 과연 무엇일까?

위에서 기숙사 생활을 예로 든 것이 군생활의 긍정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의에 의했건 타의에 의했건 처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학생들은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입에 안 맞는 기숙사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한 방에서 세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모자라 2학년 학생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가며 생활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생소하고 불편하다. 더군다나 밤 늦은 시간까지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어도 옆에서 자는 동료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학생들의 편의를 보아주려고 하나 기숙사 생활 자체가 주는 불편함을 해소시켜 줄 수는 없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같은 방을 쓰는 학생들끼리 사소한 다툼도 일어난다. 또는 운영부에 와서 방을 바꿔달라거나 같은 지방에서 온 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거나 고향에서 먹던 것과 같은 음식을 해달라는 등 규칙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는 학생들도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동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단체 생활이 주는 좋은 점을 조금씩 파악하게 되고 후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어간다. 1학년 학생은 같은 방을 쓰는 2학년 선배에게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받기도 하고, 수강 신청을 할 때 과목 선정을 하는 요령을 배우기도 한다. 이성교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고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선배에게 배우기도 한다. 동시에 2학년 학생은 후배 두 명과 생활을 하면서 윗사람으로서의 처신을 배워나간다. 제법 의젓한 태도로 후배들에게 기숙사 생활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자상하게 돌보아주는 믿음직한 선배로 커나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학생들끼리 마치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1~2년의 기숙사 생활을 마친 후에도 계속 모임을 가지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만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군대생활은 기숙사 생활과 같지 않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군대는 의무적으로 가는 것이지만 기숙사는 원해서 가는 것이다. 마음가짐 자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한 가정을 떠나 생소하고 성격과 습관이 다른 사람들과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나, 위아래 상하관계가 있는 것은 같다. 처음에는 후배나 신입병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배나 선임병이 되는 것도 같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비록 싫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는 책임감을 키우고 위아래 관계를 원활히 하는 사회생활의 기술을 습득하는 점에서는 기숙사와 군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가정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도 있듯이, 어차피 해야 할 군대 생활이라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교생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한 총장의 바람을 뛰어넘어 군대는 우리나라 모든 남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단체 생활을 통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숙사의 역할을 한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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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고려대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