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햄릿의 비극은 운명 아닌 성격 탓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행복하게 살 것인지, 불행하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모든 행동은 개인적인 변인과 환경적인 변인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도 결국 내 자신과 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나 가치관이 크게 달라진다. 서구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영국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다. 영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는 모든 식민지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를 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의‘행·불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는 시각이 셰익스피어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이전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이 개인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이전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Sophocles)다. 그의 대표적인 비극 작품으로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오이디푸스 왕』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대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테베의 왕에게“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고 신탁에 나와 있는 아들이 태어났다. 고민하던 왕은 결국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패륜을 저지르게 된다. 물론 본인은 자신이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 비극의 핵심은 오이디푸스왕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참 무섭고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도‘사주팔자’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본다든지, 이사를 할 때 택일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다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면 주인공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으로 변한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을 살펴보자. 갑자기 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겪은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정작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며 결행하지 못하고 만다. 널리 회자되는“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극명히 보여주는 명대사다. 결국 햄릿의 비극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유명한 연극들의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위대한 극작가로 존경받게 되었다.‘팔자(八字)’와‘성격(性格)’ 중에 어떤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을 결정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 질문의 해답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식’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고 믿으면, 더욱더 성숙한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분투노력(奮鬪努力)하게 된다.
현역 시절 투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한 후 1997년에‘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필 니크로(Philip Niekro)라는 선수는 통산 318승 29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24 시즌 동안 매년 평균 13승이상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300승 이상을 올리는 투수가 될 수 있었냐고 묻자, 그는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300승 넘는 투수가 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물론 그 자신도 모른 채 마치 비극적인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는 위대한 투수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건에 반응할 수 있는 자신의‘성격’덕분에 위대한 투수가 됐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만 그 어려움에 성숙하게 대처했느냐 혹은 미성숙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투수 니크로도 통산 274패를 경험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열렬히 사랑하던 여성에게서 느닷없이 배신을 당했다고 하자. 이 상황에 대해 모든 남자들이 다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듯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잘 살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존경받는 큰스님 중 한 분인 성철스님도“팔만대장경은 한 마디로 하면 마음 심(心)자 위에 놓인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진다. 성서에서도“무엇보다 네마음을 지키라”고 교훈하고 있다.
그렇다면 잘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발달에 대한 이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다. 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