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아트홀 기획공연 우리 춤 신시(神市)가 초청한 가을 공연 ‘김미숙의 춤 여울’은 여름을 감내하고 풍요의 가을을 맛보게 하는 싱그러운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미숙(조선대 무용학과 겸임교수)이 안무하고, 한체대 학생들이 찬조 출연한 이번 공연은 열정과 진지함으로 연륜과 세기(細技)로 무장한 ‘노련함’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춤을 진솔하게 보여준 거사였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작품은 『설레임』,『태평무』,『쟁강춤』,『내곁에 내 슬픔이』,『장고춤』,『손북춤』,『살풀이』,『부채춤』,『강강술래』 아홉 편이었다. 서른 미만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을 포함한 무용수들은 젊은 패기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조화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낸 연기력으로 한국전통 ‘무용의 원형과 변주’의 깊이감과 미학적 접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미숙은 도전과 혁신에 두려워하지 않고, 춤의 예술적 진전에 앞장서는 안무가이다. 이번 공연은 다수 무용수에 대한 그녀의 여유 있는 통제력, 작품에 대한 구성력, 무용수 배치, 의상의 색상 선별력, 음악사용 등에 이르는 전 분야에 대한 자신의 안무력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안무한 춤들은 수맥이 통하듯 시원하고, 청량감을 소지한 흥과 신을 돋우는 춤이었다.
『설레임』(출연/김서현,문서빈,박소희,용나경,장혜윤,정승은,김태희,임가현)은 모두 중고교생 춤꾼들이 선보인 창작무용이다. 봄을 캐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 바구니에 가득 담은 화사하고 다양한 구성과 연출된 풍경은 춘심(춘심)을 가늠케 하는 장관이었다. 깜찍한 애교와 풋풋한 기교로 무장한 이들의 춤은 이날 춤의 서막을 열기에 충분했다. 의상과 소품도 인상적이었다.
『태평무』(출연/정소영), 정소영이 연기한 이 작품은 진쇠, 낙궁, 터벌림,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겹걸음, 잔걸음, 무릎들어 걷기, 뒤꿈치 꺾기 등의 디딤새, 품위와 격식을 상징하는 우아한 손사위, 의상 변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차분히 연기해 내었다. ‘태평무’의 주인공인 젊은 왕비는 숨길 수 없는 젊은 나이로 성숙미를 앞서는 매력을 발산하였다.
『쟁강춤』(출연/이성영, 장한나, 전보경) 삼무사(三舞士)의 열연은 중고생들과의 수련의 정도와 깊이감을 차이 나게 하는 밝고 경쾌한 춤이었다. 빠른 템포에 맞춘 춤은 양손에 찬 방울(소리), 빨간 부채(비주얼)의 조화로운 만남으로 ‘무당춤’의 화려한 변신을 선보인 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춤 연희자의 개성에 따라 춤의 내용과 질이 달라짐을 확인시켜주었다.
『내곁에 내 슬픔이』(출연/박태빈)는 출연자의 춤 기술을 과감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연기자는 청춘별리(靑春別離)의 정한을 때론 여리게, 때론 역동적으로 슬프고 격한 감정으로 풀어낸다. 김미숙의 비장의 무기는 스타급 춤 연기자를 발굴, 조련시킨다는 점이다. 이날 태빈의 독무는 좀 더 숙성하면 투박한 사랑의 질감을 보다 연화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장고춤』(출연/박혜주, 배자연, 추예린)은 흥과 멋을 불러오는 대표 한국춤이다. ‘장고춤’은 구성과 순서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가 노출되어도 금방 드러난다. 이 춤을 잘 추어낸 춤 연기자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이들의 춤은 많은 수사나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이 춤이 단순한 흥 돋우기에서 탈피, 영적 비전에 이를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