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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경계 넘나들기, 투사(投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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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경계 넘나들기, 투사(投射)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49회)]

마음 속에 부처님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인다


대인관계 관건은 두 사람의 성숙 여부


성숙한 사람은 '너'를 중심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판단

▲김유미의영화'여행'.사랑과우정의경계에있는남녀대학생,엄마가그리운여자중학생,스스로에게휴가를선물한중년여성등을통해인간자아의성숙을돌아본다.이미지 확대보기
▲김유미의영화'여행'.사랑과우정의경계에있는남녀대학생,엄마가그리운여자중학생,스스로에게휴가를선물한중년여성등을통해인간자아의성숙을돌아본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요람에서 무덤까지”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과 불행 자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중에 좋은 대인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서적이 범람하는 것도 그것의 중요성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란 명저에서 에리히 프롬은(Erich Fromm)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대상’의 문제라고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랑을 못하는 이유가 아직 자신에게 적합한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사랑은‘능력’의 문제이다. 즉, 사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직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능력’이라고 표현한 것을‘성숙’이라고 바꾸어도 크게 그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의 문제이다. 대인관계는 기본적으로‘너’와‘나’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관계를 형성하는 두 사람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의 여부가 좋은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성숙과 미성숙의 기준은‘너’와‘나’중에 누구를 중심으로 판단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숙한 사람은‘너’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미성숙한 사람은‘나’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을 소위‘자아중심적'이라고 하는데 미성숙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에리히프롬.그는저서'사랑의기술'을통해우리가사랑이라고이야기하는감정이어떤감정이고왜일어나는지에대해서이야기한다.이미지 확대보기
▲철학자에리히프롬.그는저서'사랑의기술'을통해우리가사랑이라고이야기하는감정이어떤감정이고왜일어나는지에대해서이야기한다.


대인관계에서 미성숙한 사람은 주로‘투사(投射)’를 한다. 투사는‘나’가‘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너’가‘나’에 대해 느끼고 있다고 지각(知覺)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자기가 부모에게 불만이 많으면서도 부모가 자기만을 미워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큰 사고를 저지른 범죄자가“사회가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복수했다”라고 큰 소리 치는 것도 다 같은 현상이다. 편견이 심한 사람, 병적으로 질투심이 많은 배우자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투사를사용한다.

성격검사 중에‘투사’라는 현상을 이용하여 무의식적 경향까지 알아내는 검사가 있다. 이 검사 중 많이 사용되는 것은 애매한 그림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무슨 생각이 드는지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백이면 백 사람이 동일한 그림을 보고 제각기 다 다른 생각을 한다. 즉, 자신의 마음이 그 그림 속에 투사가 되는 것이다. 이 애매한 그림 중에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 백지를 보면서도 그 속에서 무엇을 보는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 보인다. 한 사람에게 20여장의 애매한 그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키면 그 반응 속에서 특정한 유형이 나타난다. 바로 이 유형이 그 사람의 무의식적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소년이 바이올린을 앞에 두고 생각하는 그림을 보고 A는“연습을 게을리 한다고 어머니에게 욕을 먹고 반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 B는“어떻게 연습하면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두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림에 대한 반응을 보고 성격을 속단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성인남녀가 약간 등을 돌리고 서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 대해 A는“부인이 잘못해서 남편이 꾸짖고 있다”라고 대답했고, B는“두 사람이 좋은 연구주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면 동일한 자극을 보고 A와 B가 서로 다른 반응 유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 과정이 여러 번 되풀이 되면 두 사람의 반응 유형이 확연히 들어난다. 바로 두 사람의 무의식적 경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투사는 상대방에게서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느끼는 마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내가 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네가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느끼면서 자신을 미워하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처벌하려고 한다. 이럴 경우,“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주어도 소용이없다. 오히려 설명을 변명(辨明)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이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당사자는 자신이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1994년노벨경제학상을수상한존내쉬(JohnNash)교수를다룬영화'뷰디풀마인드(BeautifulMind)'.조현증을앓고있는내쉬교수는현실과비현실을구별하지못하고,자신이마음속으로창조한비현실의세계에서사는등현실검증이중요하다는것을보여준다.이미지 확대보기
▲1994년노벨경제학상을수상한존내쉬(JohnNash)교수를다룬영화'뷰디풀마인드(BeautifulMind)'.조현증을앓고있는내쉬교수는현실과비현실을구별하지못하고,자신이마음속으로창조한비현실의세계에서사는등현실검증이중요하다는것을보여준다.


왜 투사를 할까?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면, 부모를 미워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자녀는 자신이 부모
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면 자신은 나쁜 사람이고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 부모를 미워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가 자신을 미
워하기 때문에‘자신도 할 수 없이 부모를 미워하는 행동을 한다’고 합리화(合理化)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너’에게서‘나’를 보면서 살아간다. 즉, 투사를 하면서 살아간다. 적당양의 투사를 하면서‘나’의 마음과‘너’의 마음을 조율하면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투사의 양의 문제이지 질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대인관계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 투사를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투사가 심하면 좋은 대인관계를 맺기 어렵다. 태조 이성계와 절친한 사이인 무학대사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고 전해진다. 태조가 무학대사를 보고“대사, 내가 보기에는 대사가 꼭 돼지 같이 보이는데, 대사가 보기에 나는 어떻게 보이오?”라고 묻자 대사가“제가 보기에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원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님 만 보이는 법이다. 태조 이성계가 크게 한방 맞은 것이다. 마음속에 부처님이 들어있으면 모든 사람이 다 부처로 보이는 법이다. 우리 속담에도“개 눈에는 X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한 두 번의 사례에서‘나’가‘너’에게 느끼는 것이 투사인지 아니면 사실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러 번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특정한 유형의 반응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성숙함과 미성숙함의 차이는 현실검증의 유무로도 알수 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현실검증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현실검증을 피한다.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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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고려대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