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품 춤을 만들어가는 도반인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 이영일의 흔적 있는 연출, 거꾸로 그림을 그린 화가 고정두의 즉흥 필화(筆畵), 미세한 음감까지 끌어올리는 사물놀이패(타악그룹 진명)와 악기(행드럼, 가야금, 대금, 아쟁, 피리, 해금)의 적극적 춤 해석, 소리의 현장음악이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절대적 ‘공감’과 느낌의 ‘공명’을 이끌어 내는 수작(秀作)이었다.
여섯 개 장의 춤은 고색창연한 전통의 모습을 털고, 회색빛 현대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도 전통 춤이 생존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주었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원형이 만들어지는 단순한 이치를 터득한 안무가는 감출 수 없는 넘쳐나는 ‘끼’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차수정의 우리 춤은 심리학과 인류학, 신화, 비유의 어설픈 인용의 차원을 추월한다.
시월의 천지신명께 고하는 춤은 등불을 든 궁녀들이 좌우에서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 가운데 왕비가 등장하며 ‘태평무’의 연행이 고도의 연출과 합류한다. 온유와 평정으로 즐거움을 주고 순수로 치장된 동인(動因)으로서의 상징은 자족감을 준다. 상상력의 극대화, 우리에게 익숙한 이 땅의 만백성의 시름을 덜어주고 재앙을 소멸하고자하는 염원이 시작된다.
흙을 상징하는 바닥에 놓인 천, 파종, 왕비는 흙 밟기로 의식을 거행한다. 춤 자체에 대한 해석과 아울러 상징체계로서의 춤은 연대기적 춤 전개로 실타래가 풀리듯, 수맥을 관통하듯 감동을 뿌리며 막힘없이 진행된다. 이 순헌무용단의 브랜드 가치를 인지한 관객들은 몰입과 집중으로 이 무용단의 우주 포용적 춤 작업에 ‘공감’과 존중의 예를 표한다.
우리의 전통춤, ‘태평무’, ‘소고춤’, ‘살풀이 춤’, ‘부채춤’, ‘장고춤’, ‘북춤’은 문학적 시제(詩題)를 달고 화사한 모습으로 전통춤 작업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다. 플롯과 이야기에 대한 유기적 연결도 이 작품을 주목하게 만든다. 인접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우리 춤의 향방에 대한 해답, ‘무엇’과 ‘어떻게’를 부드럽고도 설득력 있게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가을밤에 꿈꾸는 낭만적 서사, 공연은 시종(始終)을 등불과 꽃비로 수미쌍관의 절대적 미감을 견지, 안무, 연출, 조명, 음악 전반에 걸친 세련된 균형감각을 소지한다. 밝음과 원색으로 채색한 ‘꿈’은 집단 최면으로 빠져들었던 이른 시기의 헐리우드나 유랑극단을 떠올린다. 최근, 이번 공연과 같은 ‘미모’와 ‘춤’, ‘생각’의 깊이, 연행 모두가 아름다운 공연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난의 그윽한 향기’, 가을이 완연한 밤, 산책을 나온 왕비(차수정)가 보름달을 보며 나라의 번영과 풍년을 염원하는 ‘태평무’이다. 기존 한 명 궁녀의 단순한 보조를 우회한 다중 보조(등불 8명, 파종 2명, 임장 2명)의 파격, 흰색 바탕 천과 밤색 천의 색감, 반딧불이 느낌의 가을을 침화시키는 등불, 밤벌레의 울음소리, 화폭에 난이 그려지며 진행되는 춤, 느린 호흡으로 가야금을 탄다. 자연스런 손사위, 발 디딤새에 보태지는 표정연기로 세련되고 우아한 춤은 조명의 신비감 조성, 세밀한 음을 구상해내는 음악과 더불어 극상의 판타지를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