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걱정과 차원 달라
미래의 불안 사전에 덜어내
어려울 때 도와 줄 사람 필요
人福은 내가 노력해 얻는 것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상(豫想)”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예상은 앞으로 닥칠 심리적 불편함을 미리 정서적으로 경험해서 실제 그 사건이 닥쳤을 때 그 부정적 영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의외로 미래에 대한 불안, 슬픔, 부정적인 사건들을 ‘예상하는 능력’이 성공적 임무 완수와 제일 상관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낯선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겪게 될 고통을 미리 앞당겨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오히려 자신만만한 태도보다 더 성공할 확률을 높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예상은 ‘예방주사’와 마찬가지이다. 요즘에는 천연두가 없어졌다. 예방주사를 맞기 때문이다. ‘접종’을 통해 미리 천연두를 약하게 앓게 하면 그것을 이겨내려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항체(抗體)’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항체가 생기면 당연히 진짜 천연두에 감염됐을 때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우리 마음에도 이처럼 다양한 항체를 키워놓는다면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나갈 수 있다.
필자는 생활 속에서 이 ‘예상’을 종종 이용한다. 가끔 제자들이 주례를 부탁할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신랑·신부가 될 사람들을 미리 만나는 자리에서 꼭 ‘예상’을 시킨다. 즉, 신랑과 신부에게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려운 일이 무엇일 것 같으냐? 세 가지만 대답해 봐라.” 의도적으로 예상을 시키는 것이다. 대부분 이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며 당황해한다. 결혼을 앞두고 ‘눈꺼풀에 뭐가 씌워서’ 마냥 행복해하는 예비부부에게 결혼생활에서 경험할 어려움을 묻는 것이 일견 생뚱맞은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결혼생활은 현실이기 때문에 당연히 갈등이 있고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가족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가치관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그것을 예상해보라는 것인데 이때 예상되는 어려움을 또박또박 대답하는 쌍도 있고, 전혀 없을 것 같다고 장담하는 쌍도 있다. 어느 쌍이 결혼 후 더 행복하게 살까?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결혼생활을 더 잘해나간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예상하는 과정에서 ‘항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신랑이 홀어머니 밑에 외아들이라 아마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힘들 것 같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한 예비신부가 있었다. 언뜻 보면 결혼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돌해 보이긴 하지만 이 신부는 이런 말을 하면서부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확실히 표현되면 그 다음에는 그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예비부부는 그 상황을 가정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나름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군 입대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자녀에게 대개의 부모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위안을 주려고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거니까!” 또는 “괜히 미리 걱정할게 뭐 있냐?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물론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위안이 되거나 걱정을 멈출 수 있을까? 자녀를 군대 보내는 부모 역시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실제로 효과는 거의 없다. 이제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오히려 입대한 후 경험하게 될 부정적 사태를 예상하게 하고 마음의 예방주사를 맞히면 어떨까? “군대 가면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일 것 같으냐?”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면서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억지로라도 생각해보게 한다. 이것이 군대 생활을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해결 방안까지 예상해보게 하면 군대 생활에 훨씬 적응 잘 한다.
“걱정도 팔자”라든지 “사서 걱정한다”라는 말도 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할 때 비아냥거리면서 하는 말이다. 또 비슷한 뜻으로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라” 또는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 앞을 걱정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이 말들은 예상하지 말라는 것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차이는 뭘까?
현실적으로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 ‘예상’이다. 반대로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지레 걱정하는 것은 ‘기우(杞憂)’이다. 말 그대로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쓸데없다’는 말은 ‘쓸데’ 즉 쓰일 데, 다시 말하면 사용할 데가 없는 걱정이라는 뜻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팔자’고 ‘병’이다.
예를 들면 입맛이 까다로운 청년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고 하자. 이 청년이 입맛이 까다로워 ‘처음에는 군대에서 주는 음식을 잘 못 먹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면 이것은 ‘예상’이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군대에서 밥을 안 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면 이것은 병적 염려증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 해도 되는 걱정을 쓸데없이 하는 것도 ‘병’이지만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을 회피하는 것도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예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 사실상 사회적 지지 없이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의 사람만이 미래의 정서적 불편함을 미리 경험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사회적 지지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의 여부다. 만약 그런 사람이 많이 있다면 마음 놓고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의 여부가 심리적인 부자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성숙한 삶의 척도도 될 수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할지 모르지만 힘들 때 함께 걱정하고 자기 일처럼 도와줄 사람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힘든 세상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복(人福)’이 중요하다. 인복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