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바람을 일으키는 '춤판의 철학자'
예술 장르 간 소통·어울림 주도
진지함 속에 다양한 함의 담아
NYT "그의 춤은 보석" 극찬
[글로벌이코노믹 장석용 객원기자] 최상철은 1963년 7월6일 전북 군산에서 아버지 최혁동과 어머니 홍수희 사이에서 2남 3녀중네째로 출생했다. 그는 월명공원, 은파유원지, 도선장 같은 춤 적 상상력을 키워준 군산에서 군산초, 군산중, 군산동고를 거쳐 서울로 진학, 한양대 무용과를 졸업했다. 그는 뉴욕대(NYU)에서 자신의 내적 성찰을 심화시키면서 예술학 석사(M. A)와 철학박사(Ph. D)를 취득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여느 무용학도들처럼 스승의 무용단인 김복희, 김화숙 현대무용단(1983-89)에서 활동했다. 1990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라 사라 피어슨, 더글러스 던 등으로부터 현대무용의 새로운 메서드를 익히면서 그가 매료당한 춤 분야는 접촉 즉흥(Contact Improvisation) 이다. 멀티미디어와 인간의 몸을 매개로 미디어아트와 춤을 연결하려는 노력도 당시 뉴욕의 문화적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한 환경에서 하는 것이다.
최상철은 미국에서 무용수, 안무가, 초빙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는 96년 귀국한 뒤, 음악, 영상,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장르간 경계허물기, 공동작업을 하면서 예술 간 소통과 어울림을 주도했다. 유학시절 체득한 ‘접촉을 통한 즉흥’은 자신의 안무세계를 지배하는 기반이다. 2001년 국내 최초로 진행된 ‘임프로비제이션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맡기도 했다.
최상철의 대표안무작은 『구름과 바위, Cloud and Rock』 (1991,솔로), 『심심한 여자』 (1992), 『날아라 호빵맨』 (1998), 『까망천사』(2000), 『빨간 말』 (2001), 『빨간백조』 (2002), 『커넥티드, Connected』(2006), 『기억의 방』(2008),『섬』(2009), 『논쟁』(2010), 『오나 I, Is She coming?』 (2012), 『오나 II, Her Immortal』 (2013), 『크라이, CRY』(2014)를 들 수 있다.
2000년 이후 그의 작업은 멀티미디어 댄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진다. 멀티미디어 댄스 『까망천사』, 『접촉』, 『빨간백조』 , 『커넥티드, Connected』 등 춤과 영상 또는 하이테크와 인간 신체의 접목이란 명제아래 춤의 지적 담론을 제시했다. 그의 춤은 진지함 속에 다양한 함의를 담은 작품이지만 그의 속내를 모르는 관객들은 장난기가 농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구름과 바위, Cloud and Rock』 (1991, 솔로, 뉴욕, 메리마운틴극장)는 그의 안무 데뷔작이다. 현란한 몸동작과 기계적이고 정확한 몸동작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며 세상의 이치, 인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 이 작품은 뉴욕타임지의 제니퍼 더닝으로부터 "마술가와 같은 움직임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의 춤은 작은 보석과도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심한 여자』 (1992, 문예회관 소극장),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무용단을 창단하고, 명쾌한 철학적 수사로 ‘수맥이 통하는 춤’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 작품은 1999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재연된다. 세상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도발, 가학, 피학에 얽힌 춤 수사는 그가 존재하는 방식의 일부이며 보편적 상상을 뛰어넘는 그의 안무는 설득력을 얻는다.
『날아라 호빵맨』 (1998, 시어터 제로)은 극장 개관 기념 공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움직임에 의한 우연성’ 창출은 자신의 아내(박경숙 공주사대 교수, 발레)와의 자연스런 장난의 이미지에서 추출하여 작품화한 것이리라. ‘맨’ 시리즈의 한국적 풍경, 갇히고 정체된 세상에 대한 고발을 울분과 분노를 우회하고 난장과 익살로 풀어낸 작품이다.
『까망천사』(2000)는 제5회 한국춤평론가회 수상작으로, 세련된 영상, 퍼포먼스적 실행 등을 활용하는 다매체춤을 새롭게 시도하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계적 문화환경을 형식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간략하고 반복된 동작을 통해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했으며, 예술/기계문명, 일상적 동작/춤, 공연자/관객간의 대립되는 예술적 가치관이 인상적으로 융해되어 있었다.
‘까망’이 상징하는 현실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간절함이 들어가 있다. 익숙한 풍경의 이슈화는 최상철의 상상력이 ‘타인의 방’에서 이질적 문화를 포착해내는 능력에 기인한다. 색조를 심리 표현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검은 천사를 하얀 천사로 변환시키는 아이디어들은 이후, ‘블랙 스완’, ‘남성 백조’등의 탄생으로 미루어 그가 발상이 선지식의 일면을 보여줌을 입증한다.
『빨간 말』 (2001)은 허위와 몰지식에 대한 풍자이다. 텅 빈 사람 머리모양의 세트에서 춤추던 세 마리의 빨간 말(여인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최상철과 합류, 4인무가 된다. 최상철의 반어법과 익살로 허망함이 돌출된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등장되면서 현재적 춤과 암울한 현실에 대한 심각한 조롱이 번진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몸의 항거가 구체화된 작품이다.
『빨간백조』 (2002)는 『빨간 말』에 이은 적색 2탄이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 『빈사의 백조』의 재해석으로, 네 마리의 백조를 오리로 대체한다. 오리들 속에서 백조를 꿈꾸는 인간, 춤에 영상이 첨가된다. 권력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백조 반해 미운 오리들이 감내해내는 투박한 세상에 대한 따스한 응시, 최상철의 춤꾼들, 서민들에 대한 인간관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빨간백조』를 뒤로하고 최상철은 2003년 미국으로 출국, 애리조나 주립대 초빙예술가가 된다. 2006년 귀국하여 발표한 『커넥티드, Connected』(2006)는 인간의 소통과 접촉에 대한 에세이였으며, 2007년엔 ‘한일댄스 페스티벌’ 출연, 연극 ‘벚꽃동산’ 안무, 홍신자와 이인무 『Touch the moon』, 대전 춤 작가전 안무 및 출연, 『Connected II』등으로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최상철은 미국 H.T Chen 무용단에서 무용수, 워싱턴 스퀘어 레퍼토리 댄스 컴퍼니에서 안무가로 활약한바 있다. 경기도 문화재단 우수창작 발표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억의 방』 (2008)과 『섬』 (2009)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인간 소외를 다룬 작품이다.
『논쟁』(2010)은 2013년 캐나다 CINARS에 무용분야에서 한국의 무용가 최초로 공식프로그램에 초청되었고 이스라엘, 중국, 인도 등 국내외 유수 무용제의 초청과 수상을 한 작품이다. 최상철은 인류 역사의 흥망의 근원을 논쟁에다 두고 수많은 대립항을 생각해낸다. 그의 상상은 나, 너에서 우주로 영역을 확장하고, 논쟁 목록을 들추어내고, 욕망의 다른 이름에 기생하는 춤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에 논쟁을 건다. 무대, 이야기, 비유와 상징, 몸과 춤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다. 이 작품은 무용수와 춤 사이의 논쟁, 인간과 인간의 육체가 벌이는 논쟁, 관객과 무대 사이의 논쟁, 표현과 존재, 몰입과 의미, 시간과 운동의 논쟁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오나 I, Is She coming?』 (2012)는 수많은 의자, 무언가를 기다리는 남자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빈 공간이다. “그녀가 올까?”를 묻고 또 묻는다. 기다림과 간절함에서 다가온 오 그녀는 아름답지만 생기를 잃은 마네킹의 모습이다. 현대인들의 실존적인 허무, 정신적 허무와 상실감을 뛰어넘어 기다림의 중첩으로 허무를 넘어 마음의 온도를 높여간다. 『오나 II, Her Immortal』 (2013)는 전편의 감동과 이미지를 정제한 작품이다.
『크라이, CRY』(2014)는 제14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초청작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화해’에 관한 진지한 물음을 추구한 이 작품은 자신과의 싸움, 사회적 이슈를 춤을 통하여 관객과 공감하고 고민한다. 4D, 설치미술 등 하이테크와 인간의 순수한 움직임을 결합한 ‘멀티미디어 댄스’로 4개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작품이다.
최상철은 관객을 흔들면서 이해와 설득으로 소통하는 안무가다. 현대무용의 한국화를 지향하며 끊임없는 실험과 과감한 도전으로 무용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내로라하는 극장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며, 다양한 작업과 국내의 대표적 무용전문축제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프로그래머, 부산국제무용제(BIPOD) 프로그래머와 해외 프로그래머를 역임하였다.
최상철, 이별의 슬픔을 감내하며 성숙한 진솔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안무가이다. 그의 꿈은 황록색 페리도트를 닮아있다. 그의 해학적 춤 담론에 담긴 거침없는 돌출과 어이없음에 관객들은 그를 좋아하고, 잔잔한 춤의 익살꾼임을 인정한다. 그의 춤은 현대적이나 그는 전통을 숭상한다. 그는 춤의 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춤의 철학자, 그의 장도에 빛이 함께하리라.
/글로벌이코노믹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