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 연재소설] 검법 용풍우락(105회)-칼날에 용이 뜨다
늙은 여협은 지팡이를 옆으로 벌려 눕힌다. 순간, 모든 기세가 캄캄한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니, 그 심지의 깊이를 잴 수가 없다.“우주가 누움은 그 시작이며 끝이오. 빛을 내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서 있소. 별도 빛도 살아 있는 것은 세워진 것이오. 사람도 세워지면 살아 있는 것이오, 누우면 죽은 것이오. 서로 의지하여 서는 것이 사람이오. 하늘이 세우고, 땅이 세우고, 인간이 세워 산자가 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무사의 길이오. 그러니 고난을 밝음으로, 역경을 기쁨으로 만드는 소용돌이가 검은 길이오(陰陽始終石 黑行). 어둠 중에서 빛나는 별이 있으니, 천년만년 스스로 빛내어 어둠을 밝히오. 그 별자리를 따라가는 자가 세상을 바꿀 힘을 얻는 것이오.”
늙은 여협이 지팡이를 세우니, 다시 빛이 살아난다. 아무는 영롱한 칼빛에 눈이 시려 질끈 두 눈을 감았다.
“흰빛은 어미인 어둠을 가르고 살아나서 일을 하오. 오랜 잉태를 담은 느린 칼은 작은 시간까지 살아나게 하기에 천하제일 검이 되오. 그러니 내 욕심을 버리기까지 오랜 단련이 필요하지요(龍潭夢銀? 白行). 흰빛이 느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소?”
늙은 여협은 느리게 말을 잇는다.
“이 흰 칼빛은 시작도 끝도 없소.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오. 마치 자식과 같은 것이지. 자식은 스스로 움직이고 일하지 않소! 모두를 받아들이되, 그 모두를 내어 놓는 것, 그것이 흰빛이오. 빈 마음에 묘한 힘이 생기는데, 그 힘이 유인력이오. 바람에 깃발이 휘날리는 전기세(展旗勢)이오. 유인력은 기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되감아 치니, 흰빛과 검은 빛을 연결하오.”

“바로 선 자는 음양세의 기세를 다룰 줄 알게 되오. 양세(陽勢)는 봉황이 해를 머리에 이고, 잡기(雜氣)를 날개로 흔들어 베고 자르는 법이오(餘命皮鳳頭 陽勢). 어두운 밤이 지나야 아침 해가 뜨지요. 어두운 때는 위기가 아니라, 빛을 받는 기회이오.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기세가 음양세 검법이오.”
늙은 여협은 아래로 칼날을 향한 채 지기를 모은다.
“음세(陰勢)는 불사룡(不死龍)이 갖고 있는 역린세(逆鱗勢)요. 불사룡은 고난에 지지않는 존재요. 어떤 불구덩이에서도 살아남는 기백을 갖고 있소(不死龍逆鱗 陰勢). 역린세는 창의적인 돌파력이오. 최고의 초력을 내는 기세이오. 역경을 헤치는 자세는 모든 형세를 버리고 가장 낮은 마음을 취하는 것이오. 음세에 가장 큰 빛이 서리오.”
아무는 자신의 호흡을 버리고는 우주의 호흡을 담는 묵상을 한다.
그 모양을 보고 늙은 여협이 말한다.
“방금 말한 것은 빛의 무사들이 대를 이어 이미 전하고 깨달은 것이오. 비전검법은 기세를 담을 만한 그릇을 찾는 것이오. 그런 준비가 된 자에게 기세는 인연을 맺는 것이오.”
아무는 크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새 생명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담을 그릇과 빛을 낼 힘을 낼 공력을 갖추는 것이 참 수행임을 알겠습니다. 진짜 살아 있는 빛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누운 생명을 일으켜서 밝은 세상을 만들 빛을 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달그림자를 자를 수 있겠습니다. 진짜 달빛을 가르는 달그림자는 내 안에 있습니다.”
늙은 여협은 지팡이를 쥔 손을 모아 답례를 한다.
“나는 이런 인연을 오래 기다렸소. 오히려 내가 감사하오. 덕분에 큰 사랑을 하게 되었구려. 물려받은 깨달음을 그대에게 전하였고, 우리 함께 이룬 빛이 일을 할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오. 조상님들도 크게 기뻐할 것이오. 바라옵건대 앞으로 그대는 스스로 질문하고 무신으로부터 스스로 답을 듣는 지혜로운 자로 성장하기를 바라오. 우주의 바다로 나가기를 바라오.”
아무는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묻는다.
“제가 어떻게 하면 깨닫게 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원래가 별이오. 몸 안에는 자기의 빛을 내고, 외부의 세계와 소통하는 수십억겁의 모든 기억이 담겨 있소. 수련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감각을 열어 가시오. 그러면 좁은 땅에 갇힌 머리는 깨어나고, 본래의 호흡이 살아나서 건강해 질 것이오.”
늙은 여협은 아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며 말한다.
“그러니 바닥의 냉기, 바람의 고난, 산마루에 홀로 선 외로움에 슬퍼 말구려. 무사의 슬픔과 외로움은 겉껍질을 벗고, 천기를 더 잘 받기 위한 유인력이오. 음의 기운을 딛고 선 위대한 자전력이 나오는 것이오! 이제 자네의 칼빛을 신전에 바칠 수 있겠소?”
아무는 마음 깊은 곳으로 우주의 파도가 힘차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물결에 몸을 싣고 큰 우주의 바다로 자신있게 떠날 수 있는 부력이 몸 안에 생김을 알았다. 떠나는 늙은 여협의 등을 향해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늙은 여협의 머리 위에, 보름달이 둥실 떠서는 크게 웃고 있다.
아무는 오성의 해탈을 하나라도 잊지 않고, 몸에 각인하기 위해 곧바로 하산하여 도장에 수련하러 갔다. 관장실 벽에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북녘 대륙의 호수를 찾으러 갑니다! 이 땅의 자유를 회복할 용을 깨우기 위해서… ….’
글로벌이코노믹 글 박신무 그림 허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