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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는 손실과 해방의 시기…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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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는 손실과 해방의 시기…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 달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59회)]

잃는 부정적 관점에 얽매이지 말고 얻는 긍정도 봐야

우리의 일생을 크게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물론 이 구분은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또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같은 시기, 예를 들면 아동기라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등으로 더 세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이라도 한 시기를 다른 시기와 나누는 데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다른 시기와 뚜렷이 구별되는 심리적 특징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그 시기에 해결해야만 하는 발달과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발달과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대상(對象)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년기는 심리적으로는 어떤 시기인가? 노년기는 무엇보다 손실(損失)의 시기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시기이다. 먼저 건강과 체력을 잃는다. 아무리 젊었을 때 펄펄 날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노환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체력도 옛날 같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노쇠해져서 죽게 된다. 노년기에는 직장과 일을 잃는다. 아무리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과 욕구가 있더라도 국가나 조직이 정해놓은 나이가 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십 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떠나야 하고 더 이상 그 조직에서 일할 수 없다. 다른 일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긴 시간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경제력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기에는 배우자와 친구를 잃는다. 아무리 금실이 좋다고 해도 결국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의지해온 배우자를 잃는다.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해온 배우자를 잃는 것은 부모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일 슬픈 인생사건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속마음까지 터놓고 흉허물 없이 지내던 죽마고우(竹馬故友)를 잃는다. 배우자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더 이상 흉금을 터놓고 지낼 말동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엔 노쇠해져 죽는 게 인간

노년기에 잃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生命)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생명을 잃게 마련이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진다 해도 결국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아무리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하려고 별의별 노력을 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요즘 건강산업이 유례없이 번창하는 것도 오래 살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수명을 조금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영생(永生)을 보장하지는 못 한다.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에 있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부부소나무'. 노년기에는 아무리 금실이 좋다고 해도 결국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의지해온 배우자를 잃게 된다.이미지 확대보기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에 있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부부소나무'. 노년기에는 아무리 금실이 좋다고 해도 결국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의지해온 배우자를 잃게 된다.
직장이 있을 때는 머리도 염색을 하고 옷도 유행에 맞추어 입으면서 나이보다 훨씬 활기차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은퇴 후에는 급격히 노인이 되는 것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 이상 염색하지 않아 갑자기 백발이 되고, 옷도 집에서 그냥 나온 것처럼 편안하고 허술한 차림으로 모임에 나타나 딴 사람인 줄 착각하는 경우까지 있다. 또한 배우자와 사별하고 갑자기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노년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것을 그리고 목숨까지 잃는 부정적 시기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이, 부정적인 면은 동시에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잃는다는 것은 곧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잃는다는 것은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얽매여 있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손실은 해방(解放)이다. 즐겁게 일을 한다고 해도 일하는 것이 항상 즐겁고 보람 있는 것은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있듯이 싫어도 할 수 없이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을 그만두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쩔 수 없이 일에 매여 사는 경우가 많다.

은퇴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로 하던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수입이 줄거나 심지어는 없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한평생 싫으나 좋으나 해왔던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비로소 얻는 것이다. 즉,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는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늘려야 하고, 개인은 긴 노년기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미리 다양한 준비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노년기는 일에서 해방되어 미루어두었던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기가 된다.

배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때로는 서로에게 구속(拘束)되어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만약 배우자가 없었다면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랑 편하게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늦게까지 실컷 담소(談笑)를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배우자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할머니들의 경우 이럴 때 마음 속으로 “집에서 기다리는 영감만 없으면…”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배우자에게 더 이상 애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애정이 깊다고 해도 때때로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 얻어

배우자와 이별한다면 물론 외롭고 두렵고 절망스럽다. 한평생 서로 의지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흉금을 터놓고 의논하고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해온 반려자를 잃는 것은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우자와 이별하는 것이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강을 잃고 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당연히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하고 계획했던 일을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죽는다는 것은 항상 미련이 남는 일이다.

노년기는 배우자와 사별한 뒤 갑자기 의욕을 잃거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잃는다는 것은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얽매어 있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지 확대보기
노년기는 배우자와 사별한 뒤 갑자기 의욕을 잃거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잃는다는 것은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얽매어 있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 남부럽지 않게 산 사람일지라도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산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 못한 남 모르는 아픔을 다 가지고 있다. 남보다 훌륭한 삶을 살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연구한 한 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겉으로는 위대한 삶을 산 사람도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잘 헤쳐나왔을 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다양한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조사(弔詞)가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라는 덕담으로 끝나듯이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또 다른 해방


존경받는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고사가 널리 회자(膾炙)된다. 의상대사와 함께 유학을 가던 중 밤에 잠결에 맛있게 먹은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인 것을 알고 토하려다가 사물 자체에는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고 단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一切唯心造)”을 깨달았다는 이 고사는 노년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큰 도움을 준다.

노년기 자체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노년기는 부정적인 시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긍정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를 부정적으로 만드느냐 긍정적으로 만드느냐는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노년기를 부정적으로 보도록 교육받았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년기는 손실만 있는 부정적 시기라고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년기는 동시에 해방의 시기이다. 물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없다고 생각하든지,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든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