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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진 것과 화해해야 자유로운 노년기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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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진 것과 화해해야 자유로운 노년기 맞을 수 있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60회)] 마음의 연금술: 절망에서 통합으로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도 자신의 실수도 용서해야

과거를 털어내야 죽어도 여한이 없는 편안함 느껴
노년기는 손실(損失)의 시기이자 동시에 해방(解放)의 시기이다. 잃는 것은 동시에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진정 독립하기 위해서는 단지 물리적으로 해방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즉 심리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마음을 붙들고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과 화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 즉 마음속에서 부정적 감정을 풀고 단지 긍정적인 사람이나 사건으로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전생애발달심리학자 에릭슨(E. Erikson)은 노년기를 ‘통합감(統合感) 대 절망감(絶望感)’의 시기라고 정의한다. 노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과업의 진행과정이 그렇듯이 ‘인생살이’의 여정도 마지막을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며 정리(整理)하는 시간을 갖기 마련이다.
행복한 일만 겪은 사람 거의 없어

한평생 살아오면서 즐겁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일만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행복해보이고 어려움 없이 팔자 좋게 살아온 것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누구에게도 말 못할 괴로움과 후회와 회한(悔恨)의 감정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겨를이 없고, 또 직면하고 싶지 않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슴 속에 묻어두고 돌아보지 않는다고 이 감정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써 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의식화되지 않은 채 묻혀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속에 응어리 진 부정적 감정을 풀고나면 심리적으로 해방된다.이미지 확대보기
마음속에 응어리 진 부정적 감정을 풀고나면 심리적으로 해방된다.
노년기는 진정으로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기이다. 이 노년기의 발달과제를 잘 해결하면 ‘통합감’을 느낀다. 통합감은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느끼며 과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느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를 돌아보고 부끄럽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또는 분노를 느끼게 되는 부정적 사건을 떠올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면서 화해를 해야 한다. 자신을 힘들게 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도 용서해야 한다. 결과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옳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용서할수록 그 만큼 더 많이 통합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과거를 용서하고 화해하면 할수록 “이제는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는”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통합감 얻기 위해 심리 과제 풀어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노인들은 주로 ‘회상(回想)’을 많이 한다. 노인들이 자주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할 일이 없는데 시간은 남아돌아가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killing time)’ 그러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인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와 화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지금 통합감을 얻기 위한 ‘심리적 과제(課題)’를 풀고 있는 것이다.

홀로 사는 한 할머니가 우연히 종교단체에서 실시한 집단상담 형식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할머니는 오랫동안 여러 여성과 바람을 피운 남편과 살면서 이미 속이 썩을 대로 썩었다. 비록 남편이 몇 년 전에 죽었지만 남편 생각이 나기만 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이 할머니는 비록 물리적으로는 남편에게서 해방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한 채 실질적으로는 계속 부정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 할머니가 남편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홍승혜 작 '회상'이미지 확대보기
홍승혜 작 '회상'
모임에 참석한 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살아오면서 속상했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한 맺힌 사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속이 후련해하는 모습을 본 이 할머니도 자신의 속이야기를 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이 할머니는 사별한 남편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의 바람 때문에 속상했던 이야기는 하나뿐인 딸에게도 차마 하지 못했던 사연이었다. 이미 눈물이 말라붙었는 줄 알았는데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남편에 대한 원망과 울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가슴 아픈 사연 있으면 털어놓아야


그동안 쌓아두었던 남편에 대한 울분을 속 시원히 털어놓자 생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남편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잊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남편과는 불행했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긍정적인 감정이 살아나자 이제야 남편을 용서하고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남편에게서 진정 해방되었다.

만약 통합감을 얻지 못하면 노인들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절망감은 “회한과 미련이 많은 삶인데 더 이상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느끼는 부정적 감정이다. 이들은 실패투성이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계속 일에 집착하고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했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욕심을 부린다. 흔히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부정적 특징이라고 부르는 ‘노욕(老慾)’과 ‘노탐(老貪)’은 그런 심리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절망감은 종종 ‘혐오감(嫌惡感)’을 동반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노인들은 사소한 일에서도 노여움을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말썽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은 절망하는 노인들은 주위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자신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마음의 연금술 얼마든지 가능해

노인들이 평안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리기 위해서는 과거를 편안히 회상(回想)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간에는 과거의 부정적 사건과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고나 비난을 금하여야 한다. 대신에 그동안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드려야 한다.

위에서 예를 든 할머니의 경우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면 뒤따라 긍정적인 감정이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면 계속 그 상태에 머물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 때문에 일부로 멈추고 자꾸 “잊어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잊을 수 있었으면 자신이 벌써 잊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제일 괴롭기 때문이다. 부정적 사건이나 감정은 “잊어라”고 윽박질러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전한 장소에서 많이 표현하면 할수록 그 강도(强度)는 약해진다. 이 과정이 충분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는다”는 절망감에서 점차로 벗어나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통합감으로 변해간다. 과거로 돌아가 실패한 인생을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건에 붙인 의미는 심리적으로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기적의 치유력(治癒力)’이다. 절망감을 통합감으로 바꾸는 ‘마음의 연금술(鍊金術)’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