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누구나 죽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죽는가는 마음에 달려

글로벌이코노믹

유통경제

공유
2

누구나 죽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죽는가는 마음에 달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61회)] 죽음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부정적 감정 충분히 표현되면 긍정적으로 바뀌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만날 것 같은 이미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으며, 얼마나 아름답게 죽느냐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렸다.이미지 확대보기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만날 것 같은 이미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으며, 얼마나 아름답게 죽느냐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죽는다. 다만 언제 죽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를 사람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생명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슬프고 피하고 싶은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면서 수없이 죽음과 마주하는 의학 분야와 인간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죽음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야 관심을 받는 영역이 되었다. 죽음에 대한 연구의 장을 연 분으로 존경받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oss)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한 매체는 다음과 같은 일화로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962년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의 한 강의실. 작은 체구에 수줍은 표정의 대학원 조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16세 소녀 환자와 함께 들어섰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누구든 이 환자를 인터뷰해 보라”고. 머뭇거리던 몇몇 학생이 혈구 수 측정치 등 의례적인 질문을 던지자 소녀는 못 참겠다는 듯 자문자답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파티에 가지 못하는 것, 데이트할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것,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요?” “왜 사람들은 (내가 죽어간다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거죠?” 죽음을 앞둔 소녀의 독백에 강의실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퀴블러 박사는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이제야 과학자가 아닌 인간으로 되돌아왔군요!”
죽음 연구의 새 장을 연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oss). 그는 죽기 전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는 유언을 남겼다.이미지 확대보기
죽음 연구의 새 장을 연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oss). 그는 죽기 전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렇게 시작된 죽음에 대한 그녀의 연구는 1968년 『죽음과 죽어가는 것(On Death and Dying)』이란 명저로 결실을 맺었고, 이후 죽음에 관한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그녀에 의하면 위에 인용한 글에서 나오는 16세의 소녀가 “왜 사람들은 내가 죽어간다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거죠?”라고 절규하듯이 대다수 환자들이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불치병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다섯 단계의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그녀의 이론에 의하면 처음은 ‘부정(否定)’의 단계이다.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고 곧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거의 대부분의 환자는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가 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가능한 한 거부하고 부정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분노(憤怒)’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을 알고는 그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질투나 원한 등 부정적 감정이 격하게 나타나고 “왜 하필 나란 말인가?”라며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신(神)이나 운명 또는 가족에게 대해 부정적 감정을 표출한다.

세 번째는 ‘타협(妥協)’의 단계이다. 환자들은 이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분노의 감정도 줄어들게 된다. 이제 환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어떤 사건이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식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을 볼 때까지만 살아있게 해주세요”라고 강하게 바란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강하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어서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는 ‘절망(絶望)’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환자들은 대개 말이 없어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혼자 있는 것을 원한다. “나를 혼자 있게 해줘. 너희들이 지금 내 마음을 정말 알아?” 이 단계에서는 주위의 위로의 말이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환자들은 이런 말들이 다 살아있는 자들의 입에 발린 소리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도달한 환자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충분히 슬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야 오히려 복원력(復原力)이 작동하여 스스로 죽음의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수용(受容)’의 단계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단계에서 충분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이제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너무 슬퍼하지마, 내가 조금 일찍 죽는다는 것뿐이야.” 이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환자들이 주위의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로하면서 마지막 부탁의 말을 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미지 확대보기
물론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모두 이 단계를 동일하게 겪는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건이 다 그렇듯이 죽음에 대한 반응도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은 환자마다 다르고 또 모든 환자가 다섯 단계를 다 거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강도(强度)도 각각 다르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고 단계를 통해 극복되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힘들고 격렬한 감정을 동반하게 된다. 이 과정에도 유사한 단계가 있다. 먼저 죽음을 직면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와 유사한 ‘충격(衝擊)’의 단계를 맞는다. 처음에는 큰 슬픔에 압도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의 상태에 빠진다. 종종 당황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때로는 아무 신체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상태에 빠진다. 동시에 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그리움’의 단계이다. 고인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속하기 위해 고인의 유품을 만지거나 고인의 방을 찾아 목소리와 촉감을 느끼려고 한다. 세 번째는 ‘절망(絶望)’의 단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은 점차로 줄어들지만 고인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면서 절망감과 삶에 대한 무망감(無望感)에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회복(回復)’의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별 후 1년 정도가 지난 후 도달하는 단계이며, 일상생활을 다시 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 이제는 고인을 회상하며 마음 속에 담고 일상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별에 따른 비탄 과정도 개인에 따라 그리고 사별한 대상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든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데는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제일 빠르고 중요한 방법은 슬픔이나 분노 등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참거나 빨리 잊으라고 조언한다. 마치 슬픔을 계속 표현하게 하면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고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편하게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극복하는 시간도 빨라진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충분히 표현되기만 하면 항상 긍정적인 감정이 뒤따라온다.

이제는 죽음을 우리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에서도 평상시에 교육할 필요가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직면할 수 있도록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죽음에 대한 전문가’인 퀴블러-로스에게도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1995년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전신마비로 고통 받아 온 그녀는 임종을 예감한 순간에도 평온했다. 평소 “죽음은 휴가를 떠나는 것과 같다”며 여유를 부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그녀가 마지막 남긴 유언이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