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양 갖춘 가족 같은 이미지
이지숙(李知淑, LEE JI SUK)은 아버지 이상철과 어머니 이현숙 사이의 3녀 중 둘째로 1987년 2월 8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송북초, 덕일중, 전주예고, 성균관대 무용학과와 교육대학원을 거쳐 한양대 공연예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현대무용가이다. 성대 무용학과 교육조교, 한양대 ERICA 현대무용 강의교수, 전주예고, 안양예고에 출강하고 있다.
이지숙은 2012년 제7회 전국무용경연대회 전체 ‘대상’과 제49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현대무용 ‘금상’ 수상 기록이 있는 저력의 춤꾼이다. 그녀는 유년 시절부터 명랑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활동적이고 친화력이 두드러진다. 주변 친구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녀가 선택했던 무용은 이제 그녀의 일상을 봄날의 정원으로 만드는 꽃이 되었다.
이지숙은 초등학교 때부터 콩쿠르에 나가면 입상해 춤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진학하기까지 지도해준 정인순 선생, 전주예고에 진학하여 박규연 선생으로부터 춤을 좀 더 폭넓게 배웠고, 춤을 추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성균관대에 진학해 정의숙 교수, 한양대 박사과정에서 이해준 교수로부터 세기(細技)를 연마하고 있다.
그녀의 최근 안무작 『Mimicry』(2014), 『Someone』(2014), 『Help』(2015) 세 편을 살펴본다. 모두 서울 개포동 M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로 『Mimicry』는 성형중독, 외국문화, 사회변화 등을 염두에 두면서 만든 작품이다. 안무가의 입장,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처음 접해보는 많은 일들과 관계, 그 환경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안무가는 무용수들의 감정, 생활습관, 행동 등을 관찰하며 독서 장면, 책을 찢는 등 다양한 몸짓들로 작품의 ‘춤깔’을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따라하게 되고, 반복되는 듀엣 동작은 모방을 진행시킨다. 속도와 템포를 조절하며 같은 동작이지만 리듬, 동작, 움직임의 흐름을 다르게 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무분별한 모방을 비판한 작품이다.
『Someone』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별 이야기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가버린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를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안무가는 만남과 이별 사이에 존재했던 소중한 사람, 중요한 무엇을 인지하고 ‘시간은 망각을 낳고 이별을 부름’을 아쉬워한다.
인간은 누군가(someone) 소중한 사람을 옆에 두고 때로 망각하며 살아간다. 무료한 시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스스로를 그 벽에 가두어 버린다. 이별을 배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지쳐있는 사람들,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료해지고, 무기력함을 느낀다. 『Someone』은 이지숙이 써내려간 이별에 관한 랩소디이다.
그녀의 야심작 『Help』는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 어려운 상황들이 있을 때 바라만 보고 멀리서 안타까워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인간과 사회의 무관심한 소통을 표현한다. 라벨(Ravel)의 음악 볼레로(Bolero)를 작품 전편에 깔고 영상은 사람들의 눈(시선)을 벽처럼 쌓인 상자는 소통의 부재, 알전구는 눈물을 상징으로 사용한다.
『Help』는 3장으로 구성된다. 1장: 아픔 ‘영상(무빙)’, 하수 쪽에 한 여인이 슬픔에 잠겨 앉아 있다. 그녀의 주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사람들의 시선들은 차갑기만 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그녀는 계속 힘들어 하며 조금씩 도움을 청해본다. (바닥에서 기는 것)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보지만 그녀의 아픔을 아무리 얘기해 보아도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2장: 도움요청, 음악이 점점 고도되면서 그녀의 아픔과 슬픔도 극에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하염없이 울고 소리 질러도 더 슬프고 아파오기만 한다. 그런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더 그녀를 뒤로 밀쳐내기만 한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힘들고 아파와도 점점 강하게 앞으로 있는 힘껏 나아가 본다. 3장: 절규(‘상자쌓기& 알전구 사용’), 음악과 함께 그녀의 아픔과 슬픔도 절정에 달아오른다. 온 힘을 다해 손을 뻗고, 도와달라고 절절하게 부르짖어 본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만 남아있을 뿐이다. 절규할 때마다 사람들은 더 두껍게 벽(박스)을 만든다. 그녀는 미친 듯이 절규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다.
안무가가 의도한 『Help』의 음악이 고도되는 부분과 연기자(이지숙)가 절규하는 움직임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박스는 스크린의 역할과 소통 부재의 ‘벽’ 역할도 잘 해낸다. 알전구는 눈물 모양하고 비슷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춤이 절정에 오르면 전구는 더 깜빡거려 절규하며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연출한다. 빔과 캠코더의 연동은 그녀의 움직임을 그대로 노출시켜 『Help』를 더 심화시키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설치미술과 영상을 활용, 움직임의 의미를 강화시키는 복합적 작업은 작품을 극대화시켰다.
겸양을 겸비한 현대무용가 이지숙은 그녀를 아는 누구에게나 늘 가족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공연 경험이 부족하여 무용수로 많이 뛰고 싶다는 겸허한 그녀에게 읽고, 보고, 느끼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한다. 자신의 삶과 정서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이미지로 표현해내며 자신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섬세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춤 스타일을 구축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녀의 얼굴엔 늘 보름달이 뜬다. 삶은 자신이 개척한다. 장도에 영광 있으라!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