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중의 하나는 아쟁(絃)을 뜻하고, ‘일’(一)은 다중의 의미로 사용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제목은 ‘현 일’이 되는 셈이다. 조재혁, 윤서경(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단원) 듀엣의 춤(놀이)은 지상의 춤의 아름다움을 벗어나 천상의 밋밋한 무한 수행의 무대로 옮겨간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대사 ‘To be or not to be…’ 가 생뚱 맞게 튀어나오고,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악사와 무사(舞士)는 스승과 제자, 친구 사이의 모든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가 된다. 이 춤의 하이라이트는 아쟁 받침이 여러 도구로 변용되는 장면이다.
현의 다의성(多意性), 현악기의 줄인 현(絃) 'string', 수학에서 곡선이나 원의 호의 두 끝을 잇는 선, 원주상의 2점을 연결한 선분인 현(弦),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상현(弦)과 하현(弦), 상현달과 하현달이 노니는 놀이터는 경이로운 자유 공간이다.
‘검다’라는 뜻의 한자는 흑(黑)과 현(玄)이 있으며, 과거에는 현(玄)이 많이 사용 되었으며 색으로서는 흑(黑), 그것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 속해있는 하늘의 색이다. 노자의 ‘현’ 또한 ‘현, 중묘(衆妙)의 문’에서 쓰여 있듯 존재의 근원에 있는 유원하고 신비적인 것이다.
현주(玄酒)는 제례 때 술을 대신 하여 이용하는 물을 말한다. 노자의 무(無)에 기초를 둔 위 · 진의 철학을 현학(玄學)이라고 부르며, 현(顯)은 불교에서 문신(文身: 음소 또는 글자) 또는 문(文)의 다른 말이다. 현재의 의미를 나타내는 현재는 현(現)을 사용한다.
‘현’의 다양한 의미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을 구상한 조재혁의 대표 안무작들은 리얼리티 추구로 자연스럽다. 깔끔한 구성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보는 관점에서 느끼는 공감성 때문이다. 그는 최승희 춤에서 비롯된 신무용 형태의 춤을 추었지만 이제 현실을 반영하는 춤이 더욱 자연스러운 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전통을 바탕으로 춤의 현대화 작업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조재혁, 거부할 수 없는 믿음의 춤으로 시대의 아티스트로서 우뚝 선 그의 앞에 총체적 춤의 질서를 바로잡을 경쟁의 동인(動因)이 부여된다. 축자적, 기술적, 형식적, 원형적, 신비적 양상을 새롭게 꾸밀 의무감도 따른다. 부여된 과업을 짐이라 여기지 않고, 행복이라 여기며 새로운 세계를 열 그의 시대를 기다려본다. 장도에 무운(舞運)을 빈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