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식의 ‘소풍’은 슬픔이 침화된 고통의 의미로 다가온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1990년 춥지만 따뜻했던 어느 날, 어머니는 할머니 댁으로 소풍을 가자고 말했다’라는 사내의 낭만적 내레이션과는 판이하게 다른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떠났던 할머니 집, 사탕이랑 사과를 들고 꿈에 부풀어 있었던 날, 어머니는 홀연히 떠났고 그는 버려졌다.
적정량의 조도가 받혀주는 가운데 사내는 내공이 있는 응축된 동작으로 분노를 반복해내며, 영화배우 캠 캐리의 얼굴 연기의 일면을 보인다. 이 때 조명은 하이키 라이트, 이 대목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린다. 다시 갈매기, 파도소리가 스쳐간다. 바닷가 어디 쯤 버려졌을 사내는 유년을 생각해내며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쓸쓸함이 감도는 바닷가 풍경이다.
‘단 한번 뿐인 인생/살아본 느낌이 어떠한가?//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가시처럼 찌르는 것이 인생//한가닥 숨결로도 충분히//소리내지 않고 다가갈 수도/지워낼 수도 없다//어쩌면 사람의 인생은 눈이 떠있는 상태가 아닐지도 몰라//항상 눈이 가려져 있는/그 인생이란 놈은/눈 없이도 갈 길을 잘도 찾아간다./마치 바람부는 어느 소풍날처럼...//’
노정식은 서울무용제에서 『율-律』(2010)로 ‘연기상’과 ‘미술상’, 한국현대무용진흥회(2014) ‘최고안무가 상’,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마법의 눈, Magical Eye』으로(2013) ‘그랑프리’, 한국현대무용협회(2013) ‘오늘의 무용가 상’을 수상한 인정받는 신예 안무가이다. 그의 감각적인 안무스타일과 참신한 소재는 늘 주목받고 있다.
그의 안무작은 『발화하는 몸-상처』(2014,국립현대무용단), 『마법의 눈, Magical Eye』(2014,리투아니아 제24회 아우라 국제무용제), 『기억, 폭풍을 몰고오는 구름, Memory- Storm Cloud』(2014,MODAFE), 『소풍』(2013, PADAF), 『윤동주 달을 쏘다』(2012, 서울 예술단), 『율-律』(2011,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 『마법의 눈, Magical Eye』(2011,크리스틱 초이스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 『율-律』(2010,서울 무용제)에 이른다.
노정식은 낭만과 신비를 섞은 제목들로 비범을 연출해왔다. 그가 『소풍 2』에서 보여준 ‘버려짐’은 단순히 사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권력이나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든 자들, 예술가들을 일컫는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소풍으로 설정하고 너스레를 떤 것이다. 상황과 이미지 설정으로 움직임을 넘어서는 안무 자세는 여유롭다.
『소풍 2』는 작은 움직임으로 커다란 감동을 만들어 낸 의미 있는 ‘노정식표’ 안무작이다. 그가 작품에 임하는 지나칠 정도의 진지함이 긴장감을 걷어내고 난장 같은 ‘해탈’을 가져오길 기대한다. 대격변은 평범한 일상의 소탈함을 수반한다. 노정식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