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춤’은 1980년 ‘허튼소리춤’으로 초연된 뒤 발전을 거듭하며 후반부에 살풀이춤을 붙여 1993년 ‘전통명인 7인전’에서 ‘허튼살풀이춤’으로 소개되었다. 이 춤은 발디딤새가 돋보이며 벽사춤의 특징인 절제미와 정중동의 기법에 맺고 풀고 어르고 허트는 고도의 기교를 집대성, 흥과 멋을 표현한 춤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춤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고뇌와 번뇌로 만들어낸 정재만을 대표하는 춤이다.
‘허튼춤’은 큰 틀 속에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가동하는 춤이기 때문에 안무가는 1993년 초연했던 ‘허튼살풀이춤’과 2011년에 사사받은 ‘허튼춤’을 동시에 무대에 올려 ‘허튼춤’의 흐름과 깊이감을 느낄 수 있게 춤을 구성하였다. 안무와 연출의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녀는 정재만 선생의 딸 ‘정형진’을 특별출연 시켜 이 공연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였다.
이미희는 ‘허튼춤, 들어간다’, ‘허튼춤, 풀어낸다’, ‘허튼춤, 춘다’, ‘허튼춤, 올리다’의 네 개의 영역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의미에 부합되는 두 개의 작품들을 배치한다. 독무, 듀엣, 크바르텟, 군무로 편성된 춤은 등장인물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의 기교와 연기력을 감상하는 묘미를 제공하였다. 그녀가 편제한 춤들은 우상이 되어버린 정재만 무조(舞調)의 분위기를 간직한 신선미가 돋보이는 춤들이었다.
〇 ‘허튼춤, 들어간다’
『입춤』: 이 춤은 한영숙 선생이 ‘민살풀이춤’을 배우기전에 춤 입문 과정으로 이것저것 춤사위를 만들어서 각각의 제자들에게 시켜보는 형태의 춤으로 정재만 선생에 의해 이미희에게만 맞는 동작을 만들어낸 입춤이라 할 수 있다. 정재만류 입춤은 반듯한 춤의 자세와 양쪽 구도를 잘 조화롭게 사용함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심성을 유도하는 재인계의 한성준-한영숙-정재만의 흐름을 따른 춤이다.
라이브 국악단 ‘진명’(사물과 대금, 아쟁으로 구성)의 반주에 맞추어 상징을 담은 밤색, 은색, 회색의 원색 의상으로 단장한 이미희는 분홍위주의 제자들과 정묘한 크바르텟을 연기해낸다. 발디딤새와 회전에서 찾게되는 정재만의 흔적이 묻어난다. 이미희의 퇴장으로 3인무로 변경되는 연출의 묘가 드러난다. 자유 영혼을 구가하는 이 선 자세의 춤은 앉은 자세에서 인사를 올리며 춤의 첫 장이 마무리됨을 알린다. 조화로운 어울림의 미토스를 담은 춤은 엄숙한 공감을 얻는다. (원작 :정재만, 재구성 · 재안무: 이미희, 출연: 이미희, 조윤정, 김옥경, 이예림)
『태평무』: 1900년대 한국 근대춤의 대가인 한성준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의 춤으로 만들었고 그 손녀인 한영숙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그 제자인 정재만으로 전해졌다. 한영숙의 태평무는 본래 원삼 속 당의를 입고 한삼을 끼고 추어지다가 당의만 입는 춤으로 발전되었지만 이후 정재만이 붉은 원삼을 입어 복원, 계승하였다. 춤 사군자중 난(蘭)에 비유된다. 정형진은 원형에 가깝게 가자는 취지에서 녹음곡에 맞추어 붉은 장미를 연상케하는 적색 주조의 화려한 의상, ‘태평무’에 대한 심리묘사에 적합한 뛰어난 미모와 여유감을 보여주는 화려한 춤 연기로 ‘태평무’ 자체가 갖고 있는 분위기와 격조로 차분하면서도 장중한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태평무’ 플롯공식을 몸으로 감지하고, 춤의 핵심을 격상시키며 당의에서 백옥(백옥)의 판타지를 연기해 내었다. (원작: 한영숙, 재구성: 정재만, 출연: 정형진)
〇 ‘허튼춤, 풀어낸다’
『허튼시나위춤』: 2005년 즉흥적 요소가 강한 시나위음악에 맞춰 정재만이 허튼춤 교육을 위해 만들었으나 전반부만 안무하고 미완성되었던 것을 이후 이미희가 후반부를 정리하여 완성한 춤으로 부채, 수건 등 다양한 무구를 이용할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춤이다. 뀅가리가 선도하는 이미희의 독무는 춤의 보고(寶庫)를 여는 클래식한 제의(祭儀)와 민중의 난장을 동시에 생각게하는 중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운드는 강렬하고 분위기는 날라리처럼 달아오른다. 이미희는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원으로 돌면서 연기해낸다. 춤 연기 도중 천은 저고리 소매 안에 감추어지고 부채로 바뀐다. 끝날 것 같은 춤은 가라앉지 못한 흥을 위해 다시 한 번 타오른다. 우의(寓意), 상징, 비유를 담고 있는 ‘허튼시나위춤'은 정재만 종족의 우상의 표본이 될 만하다. (원작: 정재만, 재안무 및 출연: 이미희)
『사랑가』: 1940년대 근대 무용가 조택원의 초연된 작품으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 사랑가의 장면을 무용으로 재구성한 춤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를 무용으로 표현한 춤으로 아름다운 남녀의 아기자기 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의 모습을 흥취 있게 구성한 작품이다. 정재만과 김현자가 추었던 춤의 분위기를 오늘에 가져와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달이 떠 있는 가운데 대금 소리가 무드를 조성하면서 녹음된 곡이 흐른다. 우면당의 사랑놀이는 싱그런 젊은 한 쌍의 연인들의 서정을 오늘로 전이시킨다. 청색 주조의 조명아래 연두색 저고리와 분홍치마의 여인, 양반 자제의 사랑은 이미 익숙해진 포맷으로 그 분위기를 감지케 한다. 청순한 춤 듀엣은 숙성의 춤으로 가는 길목에 있지만 이 춤은 원래 ‘청춘’을 추어내는 것이라 보는 자체만으로도 감각의 마비를 불러올 것 같은 미적형식이 있다. (원작: 정재만, 출연: 서성원, 이수진)
〇 ‘허튼춤, 춘다’
『허튼춤』: 1980년 정재만이 초연한 작품으로 벽사춤의 특징인 절제미, 정중동의 기법에 맺고 풀고 어르고 허트는 고도의 기교를 집대성하여 만든 흥과 멋을 표현한 춤이며 정재만의 독특한 춤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경지에 오르고자하는 번뇌와 고뇌의 춤이다. 그토록 신비롭게 간직하고, 밀교처럼 전승된 작품은 중광의 ‘허튼소리’를 떠올린다. 집착을 벗어던지면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희 열정이 솟구쳐 오르고, 자신의 춤 연기에 자신이 완전히 용해되는 춤이다. 음악, 춤 연기, 조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춤이 절정에 이르면 이미희는 두루마기를 벗어 들고 흔든다. 세상의 먼지를 터는 의식이다. 세상을 모든 번뇌를 잠재운 듯한 잔걸음, 신내림을 받은 듯한 해탈의 모습, 벙거지와 같은 복식을 한 뒷모습은 정재만을 꼭 닮아있고, 제자의 춤은 스승을 뛰어넘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묘사력과 연기력이 출중하다. (원작: 정재만, 출연: 이미희)
『산조』: 송범류의 산조를 정재만이 ‘청풍명월’ 이라는 제목으로 안무한 작품으로 부채를 들고 춤추며 여인의 심정을 서정적으로 그린 춤이다 춤 사군자 중 매화(梅花)에 비유된다. 깊은 돌담 안, 규수들의 애환을 담은 ‘산조’춤은 섬세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산조’춤은 독무로 많이 추어지지만 이미희는 듀엣으로 그 분위기를 달리 한다. 대금이 분위기를 선도하면 젊은 여인들은 춤으로 욕망을 분출한다. 무대에 올라와 있는 장고, 앉은 자세에서 입춤으로 바뀌고, 장고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여인들의 오른손에 부채도 신명에 가세한다. 악사들과 춤꾼이 혼연일치가 된다. 여인들은 춤이 고조되면서 고독을 떨쳐버리고 냄리한 춤의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춤꾼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산조’춤이 이미희의 연출에 따른 내재의지와 ‘흥의 투사’ 현장을 목도하게 만든 작품이다.(원작: 정재만, 재구성·재안무: 이미희, 출연: 조윤정, 이예림)
〇 ‘허튼춤, 올리다’
『고독』: 201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초청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써 한국의 정서가 담긴 이야기와 음악, 로봇, 최첨단 영상 기술이 융합된 무용 총체극 ‘달, 천의 얼굴’의 첫 번째 씬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고독한 마음을 담고 있다. 현대적 2인의 듀엣은 기다림, 그리움, 동경의 마음을 담아 전통의 그릇에 추억과 흔적을 담는다. 창작무『고독』은 긴 치마의 여인이 부각되어 고전발레의 모습과 닮아있다. 음악은 깊이감과 공간감 있는 흐름으로 ‘고독’의 아린 부분을 파고든다. 김혜승, 이소영이 연기해낸 고독은 상처가 깊지 않은 젊은 고독이다. 운명에 걸쳐있는 고독은 아름답다. 실재하는 고독은 너무 슬프다. 침울함, 불안, 우울을 흡수한 고독은 장엄한 고독이다. 정묘하고 아름다운 ‘고독’에 관한 에세이는 우울의 상태, 그 자체를 간파한 이미희의 고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원작: 이미희, 출연: 김혜승, 이소영, 작곡: 박정양)
『허튼살풀이춤』: 1980년부터 추어온 허튼춤에 살풀이춤이 더해져 1993년 ‘전통명무 7인전’에서 정재만이 첫 선을 보인 춤으로 전통살풀이 기법을 허튼가락과 춤사위로 풀어 흥과 멋 그리고 신명까지 담은 춤이며 예술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한 수련과정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디딤새의 기교가 돋보이는 정재만 특유의 춤인 허튼살풀이는 디딤 사위, 구르는 사위 등 맺고 푸는 즉흥성과 자유로움을 맘대로 구사할 수 있는 춤이다. 춤은 하이키 라이트로 시작된다. 의상의 신비감, 백색버전, 라이브 음악, 남성의 한계를 보완한 흥미로운 춤, ‘끼’와 재능을 두루 갖춘 출중한 연기, 윗 두루마기 벗고 가지고 노는 재미, 원무, 유연성, 상황 자체 내에서의 극적 구성, 신비를 불러오는 발 디딤새, 사운드 폭주가 인상으로 다가온다. 한 바탕 광풍의 춤이 끝나고 살풀이로 회귀하는 춤은 깊은 슬픔의 ‘딥 블루’를 보여준다. 이 춤의 존재양식에 다양한 수사로 이미희는 스승에 대한 극진한 존중의 예를 갖추고 있다. (원작: 정재만, 재현 및 출연: 이미희)
이미희, 소리없는 존재로 다가와 『몸의 기억』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별이 된 스승과 긴 천으로 느낌을 공유한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천위에 얽힌 사연처럼 느리게 사라지는 얼굴위로 춤 꽃이 핀다. 천 위를 기고, 천 위에 엎드려도 기억만 또렸할 뿐이다. 그 느낌으로 풀어낸 작품 『몸의 기억』(이미희 허튼 춤)은 훌륭한 예(禮)의 정본(正本)이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