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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메르스 불안은 오히려 빠른 퇴치에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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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메르스 불안은 오히려 빠른 퇴치에 걸림돌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65회)] 역설적 의도

[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괴로운 삶이 정상…그래야 가끔 찾아오는 즐거움 알아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면 불행해진다는 역설 깨달아야
조금 오래된 일이다.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모든 일에 철저히 준비를 하고 긴장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며 살았다. 그리고 더듬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말을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볼 일을 보러 버스를 탔다. 내리기 몇 정거장에서부터 낼 요금을 미리 준비하려고 지갑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지 그만 지갑을 집에 두고 가지고 오질 않았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느라 미쳐 지갑 챙기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다.

하늘이 노래진 이 사람은 그때부터 이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모면할 지만 생각했다. 내려야 할 정거장이 거의 다 되어올 때까지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큰 결심을 했다. ‘기사에게 내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것도 심하게 더듬자. 그러면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냥 내려줄 지도 모른다.’ 평상시 같으면 자신이 더듬는다는 것을 일부로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다급했기 때문에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메르스에 대한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빠른 퇴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메르스 1차 양성반응 판정을 받아 진료중지 명령을 받은 부산의 한 병원.이미지 확대보기
메르스에 대한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빠른 퇴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메르스 1차 양성반응 판정을 받아 진료중지 명령을 받은 부산의 한 병원.
내릴 정거장이 다가오자 이 사람은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지갑을 두고 왔기 때문에 요금을 낼 수 없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말하려고 일부로 노력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조화인가?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말을 더듬는지를 보여주려고 일부로 빠르게 이야기했는데도 평소와는 다르게 전혀 말을 더듬지 않았다. 더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창하게 이야기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영장에서 헤엄을 쳐본 사람은 물에 뜨지 않고 계속 물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 안다. 사람의 몸은 물에 뜨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해수욕장이나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溺死)하는 사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허파에 공기가 있으면 몸은 뜨게 되어있다. 그래서 두렵지만 물에 빠졌을 때 마치 요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몸에 힘을 빼면 저절로 물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물에 안 빠지려고 허둥대는 바람에 허파 속에 있는 공기가 빠져나가면 몸이 무거워지고 물속에 가라앉게 된다.

어느 교수가 자신의 첫 방송 경험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녹음하기 위해 방송국에 가기 전 날 너무 긴장이 돼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방송에 나가 창피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그 교수는 할 수 없이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지도교수의 한 마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성공적으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지도교수가 몇 시에 방송이 나가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침 6시에 방송이 나간다고 대답을 하자 그 지도교수는 “걱정 하지 마. 그 시간에 아무도 방송 안 들어.” 지도교수의 이 한 마디에 갑자기 모든 근심 걱정이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잘 살기 위해서는 ‘의미(意味)’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이런 현상을 ‘역설적 의도(逆說的 意圖, paradoxical inten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이 두려우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도록 오히려 노력하라는 것이다. 언뜻보면 모순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우리 주위에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럴 경우, 우리는 보통 아무 잡념을 가지지 말고 자려고 노력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대개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잠을 자려고 노력할수록 긴장을 하게 되고 ‘잠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잠을 자는 행위에 관심을 쏟으면 오히려 ‘지나친 의도’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잠을 쫓게 된다. 이럴 때는 반대로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잠이 들게 된다.

혼자 있을 때나 친근한 가족들하고 있을 때는 재치 있게 이야기를 잘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있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무대공포증(舞臺恐怖症)’이라는 증상이다. 이 증상의 원인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다. 이럴 경우, ‘얼마나 내가 말을 못 하는지를 보여주자’라고 마음먹고 말실수를 하려면 오히려 유창하게 말을 하게 된다. 즉, 실수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오히려 지나친 불안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그 실수를 하게 만든다는 역설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을 하는 배우들도 역설적이게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에 몰두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서 박건형과 바다가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을 하는 배우들도 역설적이게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에 몰두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서 박건형과 바다가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 사회는 지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때문에 큰 혼란에 빠져있다. 학교가 휴업을 하고 각종 모임이 취소되고 있다. 백화점과 시장에 사람들이 뜸하고 음식점 등에 예약이 취소되어 생계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가능하면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과유블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불안에도 해당된다.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메르스에 감염된 경우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옮긴 것이다. 그리고 2차 3차 전염도 감염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차분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메르스를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메르스에 감염되는 경우 숨기지 말고 의료당국에 도움을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살기를 도모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은 이순신 장군의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역설적 의도’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이용한 명장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사람만큼 용맹스러운 사람이 없다. 잃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 없이 일하다보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역설적 의도의 효과를 깨닫게 해준다.

행복하게 살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면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역설도 또한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은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것이다.

괴로움이 없는 인생살이는 없다. 오히려 괴로운 삶이 정상적이다. 그러다가 가끔씩 찾아오는 즐거움은 우리 인생의 보너스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계속 되면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 한다. 또다시 지루해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가 또다시 경험하는 즐거움은 정녕 귀한 선물일 것이다. 행복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할수록 불행해진다는 역설. 이 역설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잘 사는 지름길이다. 오늘도 홈런을 친 야구선수가 인터뷰에서 말한다. “못 쳐도 괜찮으니 몸에 힘을 빼고 쳐라”는 감독님의 말씀대로 했다고.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