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어
체육대회뿐만 아니라 첼로와 지휘의 장한나, 바이올린의 장영주 씨 등 예술계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천부(天賦)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칭송한다.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학계나 사업계 등 거의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군(拔群)의 활동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주신 재능’이라는 뜻으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런 재능을 타고 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재능이 없기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체념한다.
적성을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소질 혹은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적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특별히 배우지 않았지만 운동을 잘 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그림을 잘 그리는 어린이도 있다. 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도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대장노릇을 하는 어린이도 있다. 만약 학교에서 배워서 어떤 특정 활동을 잘 한다면 그것은 적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훈련과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어떤 분야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타고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고 난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천부의 재능을 타고 났다고 부러워하거나 체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과연 어느 영역에서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주는 것이 학교에서 점수 몇 점 더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김연아 선수에게 첼리스트 장한나 양처럼 악기를 잘 연주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양에게 손연재 선수처럼 리듬체조를 잘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김연아 선수는 피겨스케이트를 잘 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면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교양을 갖출 정도로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학력이 모자란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적성을 키워주고 싶지만 그것을 알기가 어렵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성을 발견하기 위해 미술학원, 음악학원, 태권도학원 등 여러 학원에 보낸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잘 하는 것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서는 자녀의 적성을 찾아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고 싶지도 않은 다양한 활동을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다니다보니 즐거운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을 하는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적성을 찾는 제일 쉽고 빠른 길은 그냥 놓아두는 것이다. 외부의 압력을 배제하고 그냥 놓아두면 사람은 제일 재미있고 잘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이 현상을 제일 잘 이해한 교육학자가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1952)이다. 모든 어린이, 특히 지적 장애아동의 경우에도 적절한 교육 여건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 철학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교육의 장을 열었다.
그녀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마련해주고 어린이를 잘 관찰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제일 재미있는 활동을 스스로 찾아서 즐긴다. 자신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할 때 어린이들은 그 활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조작해본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즐거운 감정을 느낀다. 이 과정을 그녀는 ‘정상화(正常化, normalization)’라고 불렀다. 다시 말하면 재미없지만 할 수 없이 하는 활동은 우리 삶에서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사람이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성은 잠재력(潛在力) 즉 가능성일 뿐이다. “구슬이 서 말이래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아무리 적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적성을 찾아냈다면 그 적성이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적성을 가지고 있다면 적절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당연히 더 뛰어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환경과 교육은 결국 적성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타고난 적성이 얼마나 실현되느냐를 결정할 뿐이다. 김연아 선수에게 좋아하는 운동을 하지 말고 첼로 연주자가 되도록 강요한다거나 공부를 즐기고 잘 하는 학생에게 사업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성과는 적성과 여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두 요인이 잘 갖추어졌을 때 최상의 성과가 나타난다.
한 가지 더 추가할 요인은 물론 개인의 노력이다. 아무리 적성과 여건이 좋다고 해도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인 불문가지이다. 우리 주위에는 재능이 뛰어나고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지만 노력을 게을리 해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국민타자’로 존경받는 프로야구의 이승엽 선수의 경우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승엽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당시의 추세에 반해 프로의 세계에 바로 뛰어들었다. 그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각종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동년배 선수들보다 4년이라는 기간을 더 프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 선수는 처음 투수로 프로에 데뷔했다. 하지만 자신이 투수보다는 타자로서의 재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과감하게 보직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이승엽 선수의 재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직을 변경하도록 조언하고 훈련시켜 준 코치들의 공(功)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승엽 선수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과 자신의 약점을 겸허히 수용하는 겸손(謙遜)함 덕분이다.
우리 모두가 김연아 선수나 장한나 연주자가 될 필요는 없다. 비록 재능이 그들에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비록 취미 생활일지라도 주말마다 모여서 야구를 즐기는 동호인들과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적성을 잘 살리는 사람들이다.
적성과 여건 그리고 개인의 노력이 합쳐질 때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즐기는 것이다. 대안학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섬머힐(Summerhill)’ 학교를 설립한 닐(A. S. Neill, 1883–1973)은 교육의 목표를 “얼굴을 찡그리면서 재판하는 판사보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하는 목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