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신경』은 배준용의 전작 『초로인생, 2012』, 『Need, 욕망, 2013』, 『Booting, 부팅, 2014』, 그리고 ‘쓰레기’ 같은 작품 시리즈 『정크정글, 2014』, 『Poison Without a Name, 이름 없는 독, 2014』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배준용의 삶을 느끼게 하는 춤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금단의 울타리 안에 자기만의 성을 쌓고 실험을 하는 안무가의 모습이 보인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실험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왜 움직일까? 우리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 욕망은 왜 있다가도 없는 것일까? 욕망의 존재가 삶의 지속인가 죽은 것일까? 안무가인 자신의 존재는 무엇인가? 너의 존재는 무엇인가? 진짜 나는 있는 것인가?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적 탐구는 결국 무용가의 삶으로 귀착된다. 거대한 철학의 한 모퉁이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건한 사유는 춤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예술가들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의 일부분이다. 배준용 현대무용의 양식은 철학의 상부를 소양으로 몰아간다.
이 작품은 크게 5장으로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1 장; 전기를 상징하는 강진안, 옷을 멀쩡히 다 입은 양말을 벗고 세우거나, 각을 맞추는 등 사물에 대한 편집증 증세를 보인다. 거대한 조형으로 비춰지는 고깃덩어리(여자 마네킹)가 매달려 있다가 내려온다. 고깃덩어리를 끌고 윗 무대로 이동한다. 무대 위쪽에 고깃덩어리를 내려놓고, 무대 아래쪽으로 다시 내려온다. 표현주의적 상황설정은 분위기를 압도하고, 위엄있는 존재의 나약함과 혼돈을 나타낸다.
2 장; 전기가 아래 무대에 도착하면, 기저귀만 입은 벌거벗은 사람들이 무대에서 각각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전기가 사람들을 바라본다. 공간을 이동하며 사람들의 욕구를 따라한다. 2-1; 마지막에는 고깃덩어리 위치에 도착하니 여자무용수(허상)가 단 위에서 동작하기 시작한다. 전기는 그 허상을 바라본다. 객석에서 바라볼 때는 강진안은 천천히 허상으로 다가간다. 관객들의 의아심이 고조된다.
3 장; 다른 무용수들의 덩어리가 움직인다. 플로어 동작은 마치 세포의 반응, 분비, 결함의 덩어리이다. 전기, 사람들 위치를 돌아다니며 동작을 따라한다. 혼돈이 가중된다. 4 장; 전기가 혼자 남아 있다. 전기의 독무, 점점 윗 무대로 이동한다. 허상과 실체의 모습이 혼재되고, 한 인간의 갈등이 표출된다. 춤의 무조(舞調), 아이러니가 기포처럼 일어난다. 배준용 안무는 정묘한 움직임으로 주제에 밀착시키는 치밀함을 보인다.
5 장; 전기가 솔로를 끝낼 때 사람들이 유니폼을 다 차려 입고, 입에는 모두 마스크(빨간색 전구)를 착용한 상태로 군무를 추며 등장. 전기는 동작을 따라하려 하지만, 동작이 숙지가 되지 않아 잘 따라하지 못한다. 윗 무대에 전기가 홀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군무는 계속된다. 5-1; 엔딩 장면이다, 모든 사람들이 정지한다. 모든 사람들이 전기(진안)를 바라본다. 전기(진안)는 고깃덩어리 쪽으로 바라보면서 가상공간(무대)에서 현실세상(철문 열림)이 보인다. 무대의 뒤쪽이 열리면서 외부세계와 연결된다. 전기(진안)가 뒷모습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막이 내린다.
배준용, 현대무용계에 꼭 필요한 춤 자원으로 인식되어 왔던 그는 다양한 주제의 춤을 경험한 안무가로서 간과할 수 없는 심오함을 소지한 작품을 진지하게 연출해 내었다. 『쾌락신경』은 과장없이 차분하게 전개되었고, 그의 플롯공식을 따르는 등장인물들의 태연함, 환경설정의 독특함, 안무가의 진중한 정신적 깊이감은 ‘쾌락신경 관찰‘이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그는 빨리 자신을 털고 사색과 순수가 반기는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원하는 자는 얻을 지니, 그 꿈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