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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맛볼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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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맛볼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만들어보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67회)] 몰입의 즐거움

성공한 소수가 독식하는 사회, 결국엔 짜증과 불만 가득

재미있게 일하고 진지하게 놀라는 '융'의 충고 귀 기울여야
심리학의 큰 흐름인 긍정심리학을 선도하고 있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이다. 어린 시절을 헝가리에서 보냈지만 나치가 헝가리를 침공하고 유대인들의 핍박을 노골화하자 그의 부모는 이태리 로마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그 후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오랫동안 모교인 시카고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클레어몬트(Claremont)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소위 ‘잘’ 살아가던 사람들이 급격한 환경의 변화나 열악한 환경에 처하자 급격히 ‘와해(瓦解)’되는 것을 목격하고 평생을 긍정심리학의 연구에 몰두하게 만든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삶을 유지하게 하는 ‘심리적 힘’은 무엇인가?” 우리 속담에도 있듯이 ‘곳간에서 인심나고’ 누구나 ‘등 따시고 배 부르면’ 큰 문제없이 잘 지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품의 정도는 열악한 환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먼저 일반인보다 더 성공적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에는 ‘몰입(沒入)’이라고 소개된 ‘flow’ 현상을 연구하였다. 암벽등산가, 외과의사, 직업야구선수, 예술가 등을 연구하면서 이들은 ‘몰입’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무아지경(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물입은 한마디로 “현재 하는 활동에 흠뻑 빠져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에서 이런 몰입을 경험하고 있고, 이 경험을 하는 사람은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몰입’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과제난이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이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자. 능력은 정해져 있는 A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세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A의 능력보다 더 많은 능력이 있어야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어려운’ 과제, 둘째는 A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적당한’ 과제, 그리고 A의 능력에 비해서는 너무 ‘쉬운’ 과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A는 세 과제를 수행하면서 어떤 경험을 할까?

강원 영월군 영월읍 동강둔치에서 열린 제3회 영월동강 겨울축제장 얼음낚시터에서 한 어린이가 송어낚시의 즐거움에 빠져 얼음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강원 영월군 영월읍 동강둔치에서 열린 제3회 영월동강 겨울축제장 얼음낚시터에서 한 어린이가 송어낚시의 즐거움에 빠져 얼음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의 능력보다 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 A는 ‘불안(不安)’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람직한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자신의 내부나 외부로부터 실패에 대한 처벌이 주어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경우, A는 과제로부터 도피하게 되고, 억지로 과제를 풀어야하는 상황에서는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능력보다 쉬운 과제를 맡는 경우, A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과제 해결을 위해 주어진 시간보다 일찍 끝내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즉, ‘권태(倦怠)’를 느끼게 되고, 더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일을 찾아 기웃거리게 된다. 이런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조건에 처하면 그는 일하는 것이 재미가 없고, 도전도 없고 스트레스도 별로 느끼지 않은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생활을 하게 된다.

만약 A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면 그는 그 과제를 수행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지나치게 불안하지도 않고 권태를 느끼지 않으며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자신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정신이 분산(分散)되지 않는다. 과제에 주의집중하며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과제 수행에 쏟을 수 있다. 동시에 더 많은 성과를 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즉, 그는 과제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특정 과제에 몰입하게 되면 덩달아 능력이 향상하게 된다.

몰입은 ‘능력과 과제난이도가 조화를 이룰 때 느끼는 의식 상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능력에 걸맞는 과제를 찾거나 찾아줄 수 있을까? 제일 근본적이고 손쉬운 방법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과제를 선택하게 자율권(自律權)을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을 교육 현장에 제일 효과적으로 활용한 분이 몬테소리(Maria Montessori)이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다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하고, 또 재미있게 일하려고 한다. 이 간단한 원리는 몬테소리가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과제를 택해서 하도록 하는 자율권을 주었을 때 간단하게 실천되었다. 몬테소리의 연구대상자인 네 살 된 어린 소녀는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놀이를 42번이나 반복한 후에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하던 놀이를 멈추고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자신에게 맞는 과제나 상대를 선택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제의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길거리 지혜를 빌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마을회관이나 나무 그늘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한 사람은 장기를 잘 두는데 상대방은 초보인 경우 그 경기는 재미가 없다. 백발백중 이길 것이 뻔한 게임을 계속해서 두어야하는 그 괴로움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질 것이 분명한 게임을 계속 두어야하는 사람의 괴로움은 또 어떨까? 이럴 경우 해결책이 있다. 잘 두는 사람이 ‘차포’를 떼고 두는 것이다. 그러면 그 게임이 재미있어진다. 두는 사람도 재미있고,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들도 흥미진진해진다. 바로 이것이 능력과 과제난이도의 조화를 이루어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심리적 기제를 이용한 생활의 지혜이다.

우리 사회에는 불행하고 화난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실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별일도 아닌 것 같은 일에 폭행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이 현상이 제일 두드러지는 곳이 학교제도이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과제를 선택하게 한다면 모두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도달해야하는 목표는 학생들을 그렇게 내버려주지 않는다.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특정한 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을 내도록 강요당한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를 달성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한 교실에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학교에서는 어느 학생을 기준으로 공부의 난이도를 결정해야 하는가? 중간 정도의 학생을 기준으로 하면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학교 공부가 권태스러울 것이고,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은 학교 가는 것이 불안할 것이다. 결국 소수의 학생만이 교실에서의 공부가 재미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기준이 높으면 불안한 학생이 많아지고, 기준이 너무 낮으면 재미없는 학생이 많아진다.

도달해야할 목표가 한정되어 있는 사회는 불안과 권태가 만연한 사회이다. 모든 것을 학업 성적으로 평가하는 사회는 결국 불만스럽고 짜증스러운 사회가 된다. 특정한 한 분야에서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 모든 공(功)을 독식하는 사회는 필경 ‘무규범’의 사회가 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난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학벌이 좋은 사람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 친절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학생이 단순히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 더 소중한 대우를 받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한 가지 일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생활태도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택해 자신에 맞는 수준으로 즐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영역을 여럿으로 나누어 최소한 한 두 영역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을 임의로 선택해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여가와 취미 생활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활성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쌍벽을 이루는 정신의학자인 융(Carl Jung)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일하고, 진지하게 놀아라(Work playfully, play seriously)”고 충고하였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