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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스트레스·갈등이 개인과 조직 건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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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스트레스·갈등이 개인과 조직 건강하게 한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68회)] 스트레스와 갈등, 적인가 동지인가

목표가 동일하고 수단이 제한되면 조직 전체가 불안정

다양한 의견과 능력을 가진 개인이 많아야 강한 조직

‘상식’이라는 이름 아래 평소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사실들이 의외로 많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다” 라든지 또는 “갈등은 나쁜 것이다”라는 말들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머리가 빠지고 심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정보가 길거리에 넘쳐난다. 아마도 ‘스트레스’ 만큼 만인의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해로운 것일까?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갈등이 없는 부부가 행복하다” “갈등이 없는 조직이 효율적이다” 등의 표현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인 상태가 제일 바람직한 상태라고 암암리에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갈등은 가능하면 피해야하는 것이고, 될 수 있는 대로 ‘네가 양보하고 살아라’는 생활의 지혜를 대를 이어 전달하고 있다.

물론 이 말들이 알려주는 바는 스트레스나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네 골목에서 심심풀이로 장기를 두는 장삼이사(張三李四) 노인들도 백전백승할 수 있는 상대와 경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일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아마 곧 그런 상대와는 경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도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는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겨운 상태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적당히 재미있기 위해 차나 포를 떼고 장기를 둔다. 즉 적정 수준으로 승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높인다.

아마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좋다’는 표현은 ‘열(熱)이 없는 것이 좋다’는 표현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열이 없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건강한 몸은 36.5도의 체온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이 없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열이 없는 상태라고 말해도 의미가 통한다. 그리고 열이 있다는 것은 적절한 체온인 36.5도보다 현저히 높아서 건강이상(異常)이 염려된다는 뜻이다.

스트레스와 갈등은 적절한 수준에 있을 때 삶의 활력이 된다. 용인 에버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이 대표 놀이기구 '티 익스프레스(T-Express)'를 타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스트레스와 갈등은 적절한 수준에 있을 때 삶의 활력이 된다. 용인 에버랜드를 찾은 관람객들이 대표 놀이기구 '티 익스프레스(T-Express)'를 타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다.
이런 면에서 스트레스와 열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먼저, 현저하게 없는 상태는 절대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열이 현저하게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 즉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상태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가 현저하게 없는 상태는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무료하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상태다. 생활을 활기있게 하려는 절대 피해야하는 상태다.

스트레스와 열은 없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다. 만약 열이 높다면 무엇보다 먼저 낮추어야 한다. 반대로 열이 낮아서 저체온증이 생기면 빨리 열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몸이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적절한 체온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고 외부 환경에서 오는 자극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너무 낮아도 인지적 기능이 떨어지고 권태와 무료함이 증가한다. 당연히 여러 과제에 대응하는 적응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열은 낮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제일 적당한 상태, 즉 ‘최적화(最適化)’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체온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무엇보다 먼저, 건강에 적당한 체온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나이와 문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36도와 37도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스트레스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갑에게는 스트레스가 낮아 지루한 과제가 을에게는 너무 높아 불안할 수도 있다. 어린이에게는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이 어른에게는 너무 쉬울 수도 있다. 또 과제의 종류에 따라서는 남자에게는 쉬우나 여자에게는 어려워 강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또 동일한 사람에게도 최적의 스트레스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온화한 날씨에서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과제도 지나치게 더운 날씨에서는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다. 모든 도구가 잘 갖추어져 있는 여건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도 필요한 도구가 없을 경우에는 큰 좌절을 안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조건에서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최적의 스트레스 수준은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연성(柔軟性)’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는 조직과 사회에서는 최적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 결과 불안하거나 무료한 개인들을 양산하고 조직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갈등(葛藤)’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작은 조직이나 큰 사회에서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없는 상태, 즉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상태가 바람직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일치된 견해를 가지지 못할 때 그 조직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개성(個性)’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의 견해가 일치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 큰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다양성의 좋은 점들이 없어지는 동시에 단점이 오히려 증폭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성의 장점은 다양한 외부의 충격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으로 세계사의 흥망성쇠를 설명한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내부와 외부의 도전(挑戰)에 효율적으로 응전(應戰)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도전은 다양한 모습과 내용으로 끊임없이 다가온다. 이런 다양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수단과 능력도 다양해야 한다. 당연히 다양성을 미덕으로 간주하고 조장하는 조직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능력과 의견을 가진 개인이 많아야 응전의 수단과 능력도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응전에 실패하게 만드는 조직 내부의 적은 ‘절대주의’이다. 다양한 의견을 봉쇄하고 지도자 자신만의 의견을 절대시하는 조직은 결국 망하게 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은 역사가이자 법철학자인 존 액튼(John Acton, 1834~1902)의 말이다. 교황의 절대주의를 비판하며 나온 소리이지만 절대적인 권력을 탐하는 조직의 리더에게 똑같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목소리밖에 없는 조직이 다양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나 조직이 계속 생동감을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적정한 수준의 ‘갈등’이 있어야 하고, 그 갈등을 창조적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제(機制)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강한 것은 반대의 목소리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체제에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의 수준이 낮으면 그 관계는 무미건조해지고 따분해진다.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갈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갈등이 낮으면 긴장이 없어지므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상실되고 나태해지고 무관심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항상 일사불란(一絲不亂)함을 강조하다보면 결국 한 사람의 의견만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반대로 갈등이 너무 심하면 관계나 조직이 와해된다. 갈등에서 유래하는 긴장과 불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차라리 서로 갈라서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동도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최적화’해야 한다.

‘한 마음 한 뜻’은 동일한 의견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적절한 절차를 걸쳐 하나로 모아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으므로 기꺼이 하나로 모아진 의견에 따른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고 한 가지 의견으로 수렴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은 조직원의 다양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계속되는 다양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이 더 활성화되면 될수록 대항할 수 있는 갈등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더 효율적으로 응전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최적화’의 수준도 높아진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