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현재 시점에서의 개개인의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주변을 360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뒤돌아보고, 자신을 반성함으로써 주변과의 조화를 모색한다. 안무가가 시도하는 360도라는 상징성을 통해 관객은 취사, 선택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다각도로 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 안무가의 작업은 무명을 밝히는 일이다.
이 작품은 주시와 머물음, 거울을 보는 듯한 자신에 대한 간파, 주변과의 관계는 각도와 수의 유기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다섯 개의 흰색 문양을 한 검정을 주조의 롱 스커트의 의상을 한 춤 연기자들인 김승해, 김정수, 김하나, 손정현, 주사라는 모두 한예종 실기과 거나 창작과 출신, 안무가 역시 한예종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용수들의 춤은 원근법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관점에서 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상, 혹은 가치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다. 현대무용을 고전풍에 담아, 재미로 현대무용을 감상하겠다는 기대를 잠재운 이 춤은 춤의 본질과 현대무용을 대하는 기본자세를 보여준다. 음악, 의상, 조명은 정현진 안무의 특징인 현대무용의 ‘존재의 이유’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각도가 있고 보이고 싶지 않은 각도가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며 살지만 마주치는 여러 타인의 시선에 각각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알 수 없다. 주관을 가지고, 시류에 편승하지 말자는 안무가의 다짐이 춤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변질된 현대춤에 보내는 정현진의 경고장이다.
안무가 정현전은 무용수들에게 ‘들썩이게 하라, 단순화하라, 변화시켜라, 형상을 변화시켜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라, 반복을 사용하라, 역발상을 하라’는 자신의 현대무용에 대한 계율을 주문한다. 작위적 동작들은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거나, 동작이 점점 빨라지거나 이일우(잠비나이)의 음악이 제공하는 균질의 밸런스 감각을 유지한다.
무성시대를 넘어 하이키라이트는 사운드를 불러온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이된 솔로는 신비감을 침화시키고, 원시적 구음을 다시 사용한다. 블랙은 제의적 경건함을 견지한다. 현대춤의 시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정서적이며 교훈적이다. 정현진 안무의 움직임은 배경이 다른 셈이다. 유닛으로 기능하는 무용수들은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하며 군집의 분할로 균형을 맞춘다. 의미 있는 이인무는 무감(舞感)의 폭과 깊이를 달리한다.
반복적 리듬은 관객들을 중독으로 몰아가고, 정현진 자신의 반복적 삶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그는 『360-도』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춤으로 말하고 있으며, 화려한 시절에 대한 춤이라는 회한의 눈물을 흩뿌리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깊이감이 살아있는 춤은 무용수들의 테크닉, 조합 등으로 분명해지고 그의 안무 행보는 광폭이다.
춤이 깊어지면 5인의 무용수들은 범상치 않은 몸 회전으로 춤 테크니션의 모든 몸짓을 보여준다. 그 춤 속에 ‘세월은 가지만 난 아직 내 길을 가고 있다.’는 동작들이 보인다. 조명분할 속, 넓은 동작으로 요구되는 열정과 힘이 보인다. 상형문자로 암시된 다섯 글자 속에 세월, 승리, 전율, 계급, 소통은 자리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현진, 그가 뒤집어본 『360-도』는 춤의 성장과 발전 속에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미학적 성취를 인지하기도 전에 도 다른 감동과 역동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는 높은 수준의 ‘현대무용의 전통적 미학 기준’을 보여주고자 한다. 춤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준 이번 공연은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