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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자기 개방'을 하라…인생이 행복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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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자기 개방'을 하라…인생이 행복해 진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70회)] 부족하니까 인간이다

공개된 마음 영역 넓혀야 사람들과 좋은 관계 가능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 알아야 포용력도 생겨
너와 나의 대인관계에서 우리의 마음은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심리학자 조지프 루프트(Josepth Luft)와 해링톤 잉햄(Harrington Ingham)이 이 영역을 격자무늬의 창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창 모형을 ‘조해리의 창(窓)’이라고 부른다. 먼저 나의 입장에서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나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나 자신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 또 너의 입장에서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므로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너와 나의 관계에 적용시켜 보면 먼저 나에 대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은 모두에게 알려져 있는 ‘개방(開放)된’ 영역이다. 예를 들면, 내가 남자인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로는 내가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이 영역에 속하는 내용은 알려지면 나에게 유리하거나 관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나는 알지만 너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은 너에게 숨기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은폐(隱閉)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이 영역에 속하는 내용은 알려지면 비난을 받거나 관계가 깨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하지만 이 사실이 공개되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 알고 있고 너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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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영역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공개했거나 감추고 있는 부분으로 나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좋은 부분은 드러내고 나쁜 부분은 감추고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은 사실은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질시를 당할까 두려워 드러내놓고 자랑하지는 않을지라도 은연 중에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미묘한 방법을 동원해서 결국 알리고 만다. 반대로 학교 다닐 때 말썽을 부려 처벌을 받은 사실은 가능하면 감추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한다. 어쩔 수 없이 알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가능하면 오랫동안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여기까지는 사실 이해하기 쉬운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1900년에 발간된 『꿈의 해석』에서 무의식을 실증적으로 설명하기 전인 19세기까지 사람들은 ‘이성(理性)의 힘’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성을 통해 합리적인 방식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마음에는 자신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무의식(無意識)’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가 모르는 나의 부분은 당연히 남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와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모르는 나의 부분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부부관계나 부모-자녀관계 혹은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인 경우, 나는 모르지만 남은 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인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내는 내가 인색한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나는 아내가 매우 계산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그렇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식에는 또 다른 영역, 즉 ‘무지(無知)한’ 영역이 있다. 이 영역에 속해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른다. 자식에게 지나치게 처벌을 하는 문제로 심한 불화를 겪고 있는 부부가 상담을 받았다. 상담 과정에서 남편이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러자 왜 자녀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크게 화가 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아들에게로 옮겨간 것이었다. 하지만 20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은 남편에게 그런 상처가 있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성숙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개된 마음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공개된 부분이 넓어지기 위해 먼저 ‘자기 개방(自己 開放)’을 해야 한다. 즉, 자신은 알고 있지만 남이 모르고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지 않아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은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추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용되는 에너지의 양도 많아지게 된다.
만약 10이라는 양의 에너지가 특정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 에너지는 은폐가 계속되는 한 그 목적을 위해 ‘묶인’ 에너지가 된다. 왜냐하면 그 에너지는 다른 용도에 전용(轉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용도에 사용된다면 지금까지 은폐해 온 내용이 발각될 위험이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은폐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항상 긴장해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만약 은폐한 내용을 자발적으로 공개한다면 지금까지 묶여있던 에너지는 자유스러운 에너지로 바뀌어 즐겁고 성숙해지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은폐한 내용을 공개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애초에 공개해도 큰 피해가 없을 내용은 은폐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개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미스러운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심한 비난을 받거나 관계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거나 친한 친구가 있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감추고 싶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행동을 은폐하기보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에너지를 묶어둘 필요가 없이 더욱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공개된 부분이 많아지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맹목적인 부분에 대한 ‘통찰(洞察)’, 즉 ‘무의식의 의식화(意識化)’가 일어나야 한다. 맹목적인 부분은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알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나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잘 알고 진정으로 나를 위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은폐된 내용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영역은 나 자신에게도 감추고 있는 내용들이 모인 곳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양심으로부터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양심으로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가책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것을 자신에게도 감추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감추고 있는 부분을 공개하고 참자기를 깨닫는 것은 일종의 수양(修養)이 필요하다. 즉, 양심의 가책과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질책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간다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에너지가 묶여있는 것처럼 맹목적인 부분을 지키기 위해서도 많은 양의 에너지가 그 임무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적어지고, 적은 에너지를 생활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피하게 된다. 따라서 소극적이 되고 경직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 개방이나 통찰이나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믿을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부모이든, 부부이든, 친구이든, 스승이든 혹은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든 믿을 만한 대상이 있어야 한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비난하거나 관계를 끊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행복하고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우리 모두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겸손(謙遜)해야 한다. 완전할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완전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우리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이 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필요한 비난을 자제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包容力)을 얻을 수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