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누르기보다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즐겁고 더 바람직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라고 하듯이 마음을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이 요인들의 숫자나 작동원리들이 서로 다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우리 마음이 세 요인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면서, 각각 욕망(慾望, 프로이트는 이 부분을 원래 ‘이드’라고 불렀다), 자아(自我), 초자아(超自我)라고 부른다.
사람에게도 먹고 싶은 욕망(食慾), 자고 싶은 욕망(睡欲) 등 생명의 유지에 관련되는 많은 욕망이 있지만 프로이트는 초기에는 ‘성욕(性慾)’이 정신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욕망이라고 생각하였다. 프로이트 이론의 흥망성쇠는 한 사회 혹은 한 개인이 이 성욕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인정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 중에서 제일 오해를 많이 받는 부분도 역시 성욕의 해석에 달려있다. 그의 이론 중에서 제일 오해를 많이 받는 부분의 하나는 소위 “어린이에게도 성욕이 있다”는 ‘유아성욕설(infantile sexuality)’이다.
일반적으로 성욕은 사춘기에 돼서야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는 성적 욕망에서 비교적 자유스러운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물론 옛 말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고 했지만, 이는 이 나이에 성적 활동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춘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2차 성징’이 나타나고 성적 환상을 가지게 되고 적극적으로 성욕을 만족시키려는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통념이 강한 시대에 유아성욕설은 큰 반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프로이트의 ‘성(性, sex)’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 오해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sex)을 성인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인(成人)’은 성적 활동을 이해하고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사람을 일컫는다. 즉, 성인은 성인(性人)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행위’는 이성(異性) 간에 생식기를 통해 만족을 얻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도 성욕이 있고 더 나아가 성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린이를 모독하는 일이고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프로이트는 성(sex)을 넓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에 의하면, 일체의 ‘신체적 쾌락(快樂)’이 모두 성이다. 그리고 신체적 쾌락을 얻기 위한 모든 행동은 성행위이다. 예를 들면, 배가 부르도록 젖을 먹은 애기들도 어머니의 젖을 빨거나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행동은 젖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즉 그 행동을 통해 입과 입술 그리고 혀의 감각을 즐기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런 행동들은 신체적 쾌락을 주는 행동이기 때문에 ‘성적(性的) 활동’인 것이다. 그리고 갓난 어린이도 이런 행동을 통해 신체적 즐거움을 얻으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어린이에게도 성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도 성행위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통해 신체적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성(異姓)의 몸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얻은 행위, 부드러운 것을 만지며 촉감(觸感)을 즐기는 행위, 공을 차면서 느끼는 온몸의 쾌감, 심지어 상대방이나 자신을 때리면서 느끼는 쾌감까지도 성욕을 만족시키는 행위이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생존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모든 행동의 이면에는 신체적 쾌락을 즐기려는 욕망이 있다는 ‘범성욕설(汎性慾說)’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행동이 성욕과 관련이 있고, 동시에 다양한 행동을 통해 성욕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프로이트 이론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승화(昇華)’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를 오해하는 부분 중의 하나는 ‘성적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키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가 주장하면서 무분별한 성해방을 주창한다는 것이다. 이는 맞는 말인 동시에 틀리는 말이기도 하다. 우선 모든 행동의 이면에 성적인 욕망이 있다면 그 욕망을 억누르기보다 많이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즐겁고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가 ‘본능대로’ 살라고 권유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는 점에서는 틀린 말이다. 그는, 단순히 욕망이 일어나는 대로 만족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성욕을 가능하면 많이 만족시키지만 그 방법은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을 따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히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욕을 만족시킨다면 필시 성범죄로 끝날 확률이 높아진다.
성욕은 다양한 방식으로 만족될 수 있는 것이므로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성욕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프로이트는 ‘승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승화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 성숙한 삶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오히려 그가 지나치게 ‘도덕적 삶’을 강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성(異姓)의 벗은 몸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욕망을 해결할 수 있다. 만약 한 젊은이가 이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며 강제로 이성의 옷을 벗긴다든지, 또는 이성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몰래 훔쳐본다면 이는 범죄가 된다. 사실 이 경우에는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처벌을 얻게 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통해 이 욕망을 해결할 수도 있다. 미술에서 소위 누드(nude)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명작도 많이 있지만 미술관에 가면 〮상당히 많은 누드 작품들이 회화나 조각 또는 사진의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에서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술적 향기에 젖는다면 어느 누구도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을 홍보하고 조장하기까지 한다.
직접 예술 활동을 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 요즘 다양한 문화 관련 단체들에서 미술이나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활동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단체에 속해서 직접 누드화를 그리거나 모델을 통해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성의 몸을 본다는 행위 자체는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 행위가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행하여지느냐의 여부에 따라 처벌과 보상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욕망이 어떤 특정한 행위만을 통해서 만족된다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과 기회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 만족의 양도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욕망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만 욕망을 사회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技術)’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이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사용하여 즐거움을 얻은 것을 ‘승화’라고 부른다.
한 개인이나 한 사회의 성숙도는 결국 승화를 통해 만족을 얻는 정도에 달려있다. 성숙하면 할수록 승화를 통해 더 많은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 결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 반대로 미숙(未熟)하면 할수록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개인과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기술을 효율적으로 가르쳐야한다. 성숙한 삶을 프로이트는 한 마디로 “쾌락의 극대화, 처벌의 극소화”를 이루는 삶이라고 정의하였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