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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측 가능한 사회돼야 구성원들 양심대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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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측 가능한 사회돼야 구성원들 양심대로 살아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73회)] 양심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도덕적 삶 또 다른 힘 필요

윤리교육은 충분조건 못돼
자아의 힘 길러야 요구 절제

노력에 대한 보상 확신 줘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08년 KBS 1TV가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을 위해 1만8298명이 참여한 ‘국민 애송시’ 설문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된 윤동주님의 ‘서시(序詩)’이다. 시인 179명이 참여한 설문에서는 1위로 나타났다. 이 시가 일반인뿐만 아니라 시를 직접 쓰는 시인들도 애송하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서시’의 시적 자아(詩的 自我)가 양심대로 살기 위해 철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삶의 자세를 우리도 본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문학적인 감동 외에도 ‘서시’는 심리학적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명시이다. 이 시의 주제가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소망과 의지’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조금 다르게 이해하자면 ‘양심대로 살기의 어려움’을 처절하리만큼 잘 표현한 시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 마음은 본능적 욕구, 자아, 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능적 욕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욕구인데, 그 목적은 생존과 생식(生殖)을 위한 것이다. 욕구는 ‘쾌락의 원리’를 따른다. 이는 욕구가 일어나면 즉각 해결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욕구 해결이 지연되면 ‘긴장(緊張)’하게 되고, 긴장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욕구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이라도 배가 불러야 눈에 들어온다. 배가 고프면 온통 먹는 생각만 난다.

국내 근현대사 학계의 저명한 역사학자가 70여년전 가난으로 내지 않았던 여관비 70만원을 편지와 함께 갚아 화제다. 사진은 역사학자가 경북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 보낸 돈으로 만든 '양심거울'.이미지 확대보기
국내 근현대사 학계의 저명한 역사학자가 70여년전 가난으로 내지 않았던 여관비 70만원을 편지와 함께 갚아 화제다. 사진은 역사학자가 경북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 보낸 돈으로 만든 '양심거울'.
양심(良心)은 한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 생활 규범들이 내재화된 것이다. 양심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양심이라고 부르는 ‘하면 안 되는 것’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하고 처벌을 받았던 내용이 내재화된 것이다. ‘서시’에서는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려는 생각이 들 때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은 바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양심의 또 다른 내용은 ‘이상(理想)적 자아’이다. 이상적 자아는 ‘해야 되는 것’을 알려주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칭찬받았던 내용이 내재화 된 것이다. ‘서시’에서는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표현된 부분이다. 결국 ‘서시’의 시적 자아의 양심이 요구하는 것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양심은 ‘완벽(完璧)의 원리’에 따른다. 즉, 무조건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고 명령한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나 여건이 과연 양심대로 행동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서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를 바란다든지, “모든 죽어가는 것”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바로 완벽의 원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다. 상대적으로 덜 부끄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점도 부끄러우면 안 된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만 한다. 이것이 양심이 요구하는 완벽한 삶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실생활에서 양심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없고, 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시의 시적 자아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도덕관이나 윤리관이 실생활에서 실천되는 것은 또 다른 힘을 필요로 한다.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등의 다짐, 즉 의지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먹은 것을 생활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아(自我)의 힘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양심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은 자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현실 속에서 욕망의 만족과 양심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담당하는 부분이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주차장 포화상태로 인근 도로에 주차 위반 고발장이 붙은 차량들이 가득하다. 본인들만 편하고자 양심을 저버린 모습들이다./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주차장 포화상태로 인근 도로에 주차 위반 고발장이 붙은 차량들이 가득하다. 본인들만 편하고자 양심을 저버린 모습들이다./뉴시스
자아는 ‘현실(現實)의 원리’를 따른다. 현실 속에서 제일 가능한 대안을 찾아 양심과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며칠을 굶어 배가 몹시 고픈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갓 구어낸 빵 냄새에 이끌리어 빵집 앞에 도달한 이 사람에게 욕구는 배가 고프니 빨리 빵을 먹자고 졸라댄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빵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양심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먹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욕구의 힘에 굴복해서 빵을 먹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반대로 양심을 따르면 계속 굶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욕구와 양심 사이에서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현명하게 해결하는 것은 자아의 능력에 달려 있다.

결국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은 자아의 힘에 달려있다. 자아의 힘이 약하면 아무리 고상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실 속에서 양심대로 살 수 없다. 당연히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욕구 좌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도덕이나 윤리 교육은 결국 자아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으로 배우는 도덕관이나 윤리관은 도덕적 삶이나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며 같이 피우자고 권하면 할 수 없이 피우게 된다. 도덕관대로 행동하면 친구를 잃을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피게 된다. 담배를 안 피는 것보다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담배를 피지 말라는 양심의 명령을 따르려면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 결과로 비록 친구들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자아의 힘이 강해야 한다.

대부분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동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그대로 현실 속에서 살아갈 힘이 없는 것이다. 자아의 힘은 가르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용돈을 절약해서 저축을 하고 목돈을 만들어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살 때의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요구만 하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는 저축할 필요를 모른다. 당연히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저축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

저축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월급을 절약하고 적금을 들지 않는다. 적금을 들기 위해 현재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참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욕구의 만족을 지연(遲延)시킬 수 있는 자아의 힘이 약한 것이다. 욕구를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후에 반드시 더 큰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몇 년간 적금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이 폭등하여 허사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다시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지연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 예측이 가능한 사회, 노력하면 예상했던 보상이 꼭 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가 양심대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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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