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연륜 쌓일수록 빛나…삶을 대하는 방식 바뀌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은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을 ‘발달(發達)’이라고 한다. 일상적으로는 발달과 비슷한 표현으로 ‘발전’ ‘진보’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은 쓰이는 용도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인 요소는 과거보다 현재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좋게’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적인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뛰어난 운동실력을 갖추고 있는 직업선수라고 해도 그 선수로서의 수명은 길어야 30대까지이다. 뛰어난 운동실력으로 전국민을 열광시킨 김연아 선수도 결국 30세가 되기 전에 은퇴를 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선수인 우사인 볼트도 결국 몇 년 못가서 은퇴할 것이 예상된다. 체력이 절정에 이른 후에는 퇴보만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날 때는 말을 못하지만 점차로 말하는 것을 배우고 사용하는 단어의 수도 늘어난다. 즉 언어능력이 발달한다. 하지만 언어능력은 전생애를 통해 계속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20대 이후에는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능력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발달은 성장과 동의어로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성장의 단계’, 즉 발달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발달이 멈추고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단지 ‘유지(維持)의 단계’이다. 능력이 유지된다는 것은 발달이 정체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조금씩 퇴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퇴보의 양상이 매우 적게 나타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오히려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퇴보(退步)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키도 오히려 작아지고 신체적·언어적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져서 더 이상 지각을 못하거나 감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결국 우리의 삶은 탄생⤑발달⤑유지⤑퇴보⤑사망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제일 좋은 시기는 당연히 발달과 성장이 절정에 이르는 청년기가 된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시절 교과서에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민태원(閔泰瑗, 1894~1935)의 유명한 ‘청춘예찬(靑春禮讚)’이란 수필이 실려 있었다. 이 수필만큼 격정적으로 청년기가 인생의 절정이고 제일 좋은 시절이라는 것을 역설한 작품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수필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로 끝난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生)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幼少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老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黃金時代)다. 우리는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청년기가 인생의 절정이므로 어린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면서 마음으로는 제법 어른이 된 것처럼 느끼려고 한다. 여자애들은 어머니 몰래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남자애들은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 어른의 말투를 따라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어른스럽다”라는 것은 칭찬이 된다. 왜냐하면 어른이 제일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고 또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에게 빨리 어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은연 중에 압력을 가한다.
반면에 30대 이후에는 하루라도 더 청년기에 머무르려고 노력한다. 청년의 모습이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용모도 젊은이처럼 꾸미려고 한다. 동시에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도 그 시절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화장품 광고의 모델은 항상 제일 젊고 예쁜 20대 모델이 등장하고 남성용품은 예외 없이 20대의 모델이 젊음을 자랑하는 모습의 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나이가 든 사람에게 “젊어 보인다”라는 말은 덕담이 되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고맙다”고 대답한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基底)에는 ‘젊은 것이 좋은 것’이란 ‘청춘예찬’의 신화가 있다. 이 신화는 지금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우리 스스로의 생애를 바라보는 강력한 틀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청년을 지난 삶은 이미 절정기를 지난 것이 되므로 슬프고 애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다시 올 수 없으므로 한없이 허무하다.
20년 전에 스스로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 김광석(1964~1996)의 대표적인 노래인 ‘서른 즈음에’의 가사에도 잘 드러나 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이 노랫말이 2007년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 ‘청춘예찬’의 신화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왜 ‘청춘예찬’이 신화(神話)인가? 그것은 모든 신화의 특징이 그렇듯이 우리의 생각이나 이미지가 투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가 없이 단지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단 신화로 자리잡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강력한 해석틀로 작용하여 역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또는 삶을 대하는 자세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연 우리의 생애는 20~30대의 청년기를 지나면 퇴보만이 남아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삶은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져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찾을 수 있다. 대략 구분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신체적, 심리적, 영적(靈的) 영역 등 다양한 영역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신체적 영역은 물론 나이가 들면서 뚜렷하게 퇴보한다. 운동선수들의 선수생명이 짧은 것은 운동이 주로 신체영역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나 판단력처럼 심리적 영역에 속하는 많은 능력들은 나이가 들수록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발달해간다. 삶의 어려움에 봉착했을 20~30대의 젊은이에게 조언을 듣기보다는 연장자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하는 것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영적 영역에 들어가면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현실에서 초연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노인들이 더 깊게 발달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청춘예찬’의 신화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그 신화는 발달을 성장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이해하자. 그리고 신체적 영역에서의 ‘달라짐’만을 근거로 신화의 객관적 증거로 삼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지금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래야만 날로 길어지는 중·노년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지혜를 하루빨리 찾을 수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