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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사랑받아 본 부모가 자녀 사랑 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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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사랑받아 본 부모가 자녀 사랑 잘 할 수 있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82회)]붉은 털 원숭이의 교훈

최근 잦은 자녀 폭행사건 발생 심지어 야산에 암매장 하기까지

부모·자녀 관계라고 방치하며 당사자에게만 맡길 일 아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성격이 어린 시절에 형성되고 그 이후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학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어린이는 인간의 아버지이며, 생 후 몇 년 간의 사건들은 그 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면서 유년시절의 경험이 성격 발달과 정신 장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강조한 어린 시기의 핵심적인 경험은 유아의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프로이트의 이런 주장은 그 후 발달심리학과 성격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처 부적절하고 비일관적인 모성(母性)적 돌봄이 후에 나타나는 적대감이나 불안, 성적 부적응 등의 역기능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런 주장은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단지 성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에 대한 회상(回想)에 근거한 것이었다. 우리도 자주 경험하듯이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회상하는 어린 시절은 여러 면에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어린 시절에 대한 성인의 회상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인 기억을 짜 맞춘 현재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직접 어린 시절에 부적절한 경험을 하도록 통제하고 성인기에 나타나는 그 결과를 비교해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결과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실증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위스콘신 대학교 심리학 교수였던 해리 할로우(Harry Harlow, 1905~1981)는 붉은 털 원숭이(Rhesus monkey)를 대상으로 심리학사에 오래 남을 일련의 연구를 했다. 그의 연구 주제는 어렸을 때의 친밀한 관계가 어른이 됐을 때 어떤 행동을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연구를 위해 그는 인간과 94%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인간과 같이 오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원숭이, 그 중에서도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는 갓 난 새끼 원숭이를 어미에게서 떼어놓은 후 철사로 만든 대리모(surrogate mother)와 부드러운 천으로 감싼 대리모가 있는 우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새끼 원숭이들은 부드러운 천으로 감싼 대리모에게 애정을 느끼고 거의 모든 시간을 그 대리모에 매달리고 얼굴을 부비고 심지어는 살짝 깨물기까지 하면서 지냈다. 새끼 원숭이들은 부드러운 천 대리모와의 접촉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즐기고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성적 돌봄을 경험한 암컷 붉은 털 원숭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미지 확대보기
모성적 돌봄을 경험한 암컷 붉은 털 원숭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그는 모성적 돌봄의 핵심인 수유(授乳)와 접촉의 중요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철사로 된 대리모에게 젖병을 달아주어 수유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새끼 원숭이들은 젖을 먹기 위해 철사 대리모에게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재빨리 부드러운 천 대리모에게 돌아와 매달리고 접촉을 하는 행동을 하였다. 이 놀라운 결과는 모성적 돌봄이 단지 젖을 먹이는 수유 활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유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끼와 어미와의 부드러운 접촉에서 얻는 접촉위안(接觸慰安, contact comfort)이 새끼 원숭이의 성격 형성과 친밀한 사회적 관계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더욱 놀라운 결과는 어렸을 때 적절한 모성적 돌봄을 경험하지 못한 암컷 원숭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수컷 원숭이와 적절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원활한 성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렵게 수태가 된 암컷 원숭이조차도 새끼를 난 후에도 적절한 모성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어미들은 보통 때에도 새끼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심지어는 새끼들의 손가락 등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연구를 위해 새끼를 떼어내려고 할 때 어미가 새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새끼 보호행동을 하는지 여러 사람이 필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 모성적 돌봄을 경험하지 못한 어미 원숭이는 새끼에게 관심이 없고 아무런 보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비록 원숭이를 대상으로 행한 실험이지만 할로우의 연구 결과들은 큰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실험실에서 실증적으로 검증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충격은 훨씬 크고 인간의 행동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었다. 인간과 제일 닮은 영장류(靈長類)를 대상으로 한 이 실험의 결과들은 과연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적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인간도 원숭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일 것인가?

다행히도 어렸을 때 어미 원숭이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한 새끼 원숭이들도 아비 원숭이와 함께 지내면 그 박탈의 경험이 상쇄됐다. 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같은 무리들과 좋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이성 원숭이들과도 적절한 성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어린이의 양육에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결과로써 큰 의의가 있다.

이 일련의 실험의 결과로 과연 모성 행동은 본능인가 아니면 학습의 결과인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모성 행동은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어머니가 되면 자연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록 원숭이에게서 나타난 행동이지만 과연 어렸을 때 적절한 모성 행동을 경험하지 못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었을 때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부모와 자녀 관계를 새삼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버릇을 고친다’는 미명 하에 자녀를 폭행해 숨지게 하는 것도 모자라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한다든지, 백골이 되도록 윗방에 방치한다든지 야산에 암매장하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들이 부모들에 의해서 천연덕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홀로 자라나는 외자녀들이 늘어나고, 부모로부터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녀에게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2016년 ‘붉은 원숭이’ 해에 다시 생각해보는 할로우의 붉은 털 원숭이 실험 결과는 부모와 자녀 관계는 더 이상 당사자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시급하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