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랑은 자신의 창의적 예술정신을 지키고자했던 예인들의 전통을 존중해왔으며, 호남 소리, 영남 춤의 기본 좌표를 이어가는데 우직하게 몰두해온 내공의 춤꾼이다. 엉겅퀴 같은 투박한 전통의 춤판에서 보랏빛 꽃이 나비를 몰아오듯 구름 관객을 모아 온 그녀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춤 개성으로 영남교방청춤의 지조의 아이콘이 되어있다. 그녀는 가을의 미토스 속에서도 자존을 지키내며, 내 안에서 울면서, 밖으로는 아파하지 않는 춤꾼이다.
이날 공연은 거친 사막을 건너온 대상(隊商)들, 사포(沙布)로 마음을 연마한 자들, 모진 운명을 감내하며 내공을 견지한 자들의 한풀이 같은 연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강신구(한국예인열전저자)의 해설도 그러했고, 참가한 모든 예인들이 그러했다. 세월이 스치고 연륜이 묻어나는 고수들 틈에 ‘바라지’는 신선과 열정을 불어오는 ‘젊은 피’이었다. 박경랑 춤의 긴 생명력은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춤 구사는 그녀가 따스한 심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창이 끝나면 영남교방청춤의 형성과 박경랑의 현재의 춤을 있게 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춤을 사사한 박경랑의 외증조부인 고성오광대의 예인 김창후를 비롯한 김애정, 조용배, 황무봉, 김수악, 김진홍, 문장원, 유금선, 정영만, 강옥남 선생 등이다. 그들의 예혼(藝魂)을 이어받은 운파(雲波) 박경랑이 오늘 그들을 기리며 ‘춤올림’을 고한다. 각질처럼 파고드는 인연의 소중함을 가슴에 챙겨, 자양분으로 삼은 그녀는 여러 면에서 빛난다.
박경랑은 김소월(1902년생), 나운규(1902년생), 안중근(1879년생), 최승희(1911년)를 초혼하여 자신이 닦은 선근 공덕을 그들에게 돌리고, 달래며 바치는 헌무를 이어간다. ‘영혼의 몸부림’이라는 주제 아래, 부채가 던져지고, 웅장한 사운드의 혼재 속, 장검의 쌍검무가 요염한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대중적 허밍과 더불어 김소월의 ‘초혼’이 낭송된다. 여섯 악사(대금, 해금, 가야금, 장고, 징, 피리)의 반주로 초혼 의식이 시작된다.
방울을 든 세 여인과 천의 여인 4인무가 펼쳐진다. 박경랑은 양 쪽 손에 수건을 들고 독무로 신을 영접한다. 독무 주변으로 모이는 방울을 든 여섯 남녀, 신명의 굿거리장단이 동반한다. 박경랑은 등퇴를 반복한다. 갓을 쓴 여인들, 실크 인쇄된 그들의 초상을 목에 걸고 등장한다. 혼을 실어 보내는 용선(그 속에 사람), 4인의 대형 학을 든 여인들, 배에는 언급된 4인의 실크 초상 등이 실리고, 박경랑은 혼신의 춤으로 배를 떠나보낸다.
애절함을 담은 춤은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 장사익 노래의 ‘허허바다’가 대변하며, 허무와 그리움으로 모두의 가슴을 아리면서 종료된다. 이어 부채춤의 화려한 군무를 연상시키는 두 손에 무궁화를 든 서른 두명에 이르는 ‘아리랑’ 군무가 이어진다. 영상은 시대를 앞서 간 영웅들을 다시 보여준다. 박경랑은 장사익의 애절한 노래를 자신의 춤에 수용함으로써 춤의 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바라지’의 ‘소리’는 가볍게 울려오는 정주와 함께 이어진다. 홍일점 여자 악사의 축원은 거룩한 기도와 합장을 이어가고, 남성 악사 2인의 소리 도움을 받는다. 소리는 4인으로 확대되고, ‘승무’가 추어진다. 연주와 노래를 섞어가는 ‘바라지’는 대사를 넣어가며 분위기를 창출하고, 반복되는 후렴구는 “상봉길경 불봉만재 만재수 발원相逢吉慶不逢萬災滿財數發願”이다. 박경랑의 음감은 거대한 음악 생태계 속에서 ‘바라지’를 불러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길하고 경사스런 일만 만나고 온갖 재난은 비껴가며 재수 좋은 일만 가득 하소서”라는 의미로 평온과 풍요의 삶을 기원한다. 발원이 끝나갈 무렵 박경랑은 악사들과 다시 합류하고 타북한다. 박경랑이 퇴장하고 다시 축원이 시작된다. 축원이 끝나고 네 명의 북 꾼들이 판소리 ‘흥보가’를 이어간다. 젊은 국인인들, 한계를 벗어나 있는 젊은 악사들의 공생(共生)이 있는 북 운용과 소리는 자연스럽게 동참과 신명을 촉발하는 창조적 수단이 되었다.
다재다능을 넘어선 비범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형상, ‘바라지’의 ‘회향’, 요란한 사운드, 박경량의 어깨에 맨 북, 두루마기 벗고 다시 바라 들고 춤, 악사들이 있는 단까지 진출한 춤, 다시 소고, 소고 놓고 다시 징, 징 머리에 이고 춤, 징 무대에 세우고 합장, 징 주변을 돌면서 춤, 징 들고 춤, 다시 뀅가리를 치며 회전하며 춤으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인다. 박경랑은 영남교방청춤의 기교의 일부를 보여주고, 관객들이 유혹에 바지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2부는 붉은 잔나비 해를 맞이하여 액을 물리치고 국가, 가정, 개인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의식으로 진행된다. 관객과 함께하는 신명의 판은 사설이 있는 코믹한 북청사자놀이와 함께 진행된다. 놀이의 진행과 더불어 무대에 관객이 나와 같이 춤추고, 액막이로 엎드려 절을 올리고, 떡과 복주머니를 나누어주고 음복술도 마시고, 지전도 바친다. 코믹 멘트로 노래방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악사는 흥을 돋운다. 출연진 모두와 관객이 어울린 강강술래는 『심중소회』가 의도한 고단한 마음을 풀어내고 희망의 세상을 향해가는 거룩한 모습이었다.
박경랑, 영남춤으로써 흥신을 불러일으키는 고수이다. 그녀의 춤은 춤 결의 화사 밑에 숨은 엄청난 수련의 결과로 빚은 것이다. 고수들은 늘 유연함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녀의 춤은 사유와 성찰이 낳은 성과물이다. 그녀는 바른 심성으로 전통의 가치를 숭상하고 이 세상의 모든 영남춤의 추출물들을 자기화 시키고, 발레로 터 잡은 균형 잡힌 몸은 손짓, 발 디딤, 춤사위의 다양한 수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춤이 도구로 쓰는 악기들은 그녀의 몸과 더불어 춤 출 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다른 장르와 어울릴 때도 어색함이 없었다. 『심중소회』는 그녀의 춤 퇴적층에 가장 윗부분에 위치한 작품이다. 다음에 그 위에 얹힐 작품들의 구성력과 세련됨의 차이를 보고 싶고, 그녀의 신작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춤이 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