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대표적
청산유수라고 말 잘하는 것 아냐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목이 좋은 사거리마다 예비 후보들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내 건 플래카드들이 난무하고 있다. 후보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당을 상징하는 색깔들과 사진들 그리고 공약들을 내걸고 자신에게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달라고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 과정에 대해 지금까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모형을 제시했다. 하나는 합산모형(合算模型)이다. 이 모형에 의하면, 상대방에 대해 혼합된 여러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경우,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합산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대상에 대해 더 긍정적이 될 것이다. 반면에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대상에 대해 더욱 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한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보와 각 정보에 대한 선호의 정도를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괄호 안의 숫자는 그 정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선호의 정도를 나타낸다. +10은 ‘매우 긍정적’이고 -10은 ‘매우 부정적’을 나타낸다). 그 후보자는 의정 경험이 많고(+7) 말을 잘하고(+5) 잘 생겼지만(+3) 반면에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하고(-6) 거칠다(-4)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 경우 7+5+3-6-4=5 즉, 전반적으로 +5 정도의 긍정적 인상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평균모형(平均模型)’이다. 이 모형에 의하면, 상대방에 대한 인상은 단순히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합산한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합산한 결과를 정보의 개수로 나눈, 즉 평균을 낸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위의 예를 이 모형에 따라 계산하면 결과는 단순 합산한 ‘5’를 정보의 개수 ‘5’로 나눈 결과 즉 +1만큼의 긍정적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평균모형에 의하면, 위의 예에서 긍정적인 정보를 세 개를 주었을 때의 전반적 인상[(7+5+3)÷3=5]은 가장 긍정적인 정보(+7) 하나를 주었을 때보다 오히려 약해진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정보를 두 개 주었을 경우에는 -5의 인상을 형성하지만 제일 부정적인 정보(-6)를 하나만 주었을 때보다 오히려 부정의 강도가 약해진다. 이 결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일견 괴리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나 하면 우리는 긍정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반면에 부정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부정적인 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산모형과 평균모형은 서로 다른 결과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모형이 더 정확하게 인상형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인상형성의 원리가 중요하게 이용되는 분야 중에 하나가 광고이다. 광고는 특정한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긍정적 인상을 형성하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모형 중 어느 것이 광고의 효과를 높일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가산모형을 따른다면 특정 상품의 장점을 가능하면 많이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고, 반면에 평균모형이 맞는다면 가장 뛰어난 장점 한 두 개만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두 모형의 상대적 정확도를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다. 미국에서 출산을 앞둔 산모들을 대상으로 일회용 기저귀에 대한 두 가지의 광고를 보여주고 그 효과를 검증했다. 한 광고에는 그 기저귀의 장점을 여러 가지, 예를 들면 다른 상표의 기저귀보다 ‘흡수력이 뛰어나다’ ‘질기다’ ‘사용하기 편하다’는 점 등을 알려주었다. 또 한 광고에서는 그 기저귀의 가장 뛰어난 점 한 가지, 즉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점만을 알려주었다. 연구 결과는 평균모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점만을 강조한 광고의 효과가 여러 장점을 열거한 광고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다양한 실험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평균모형에 의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더욱 정확하게 인상형성을 예측할 수 있는 ‘가중평균모형(加重平均模型)’이 제시됐다. 이 모형에 의하면 사람들은 평균모형에 따라 인상을 형성하지만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면 그것을 나타내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많은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인상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관리자를 뽑는 면접에서는 용모가 아름다운 것보다는 행정 경험의 유무를 더 중요하게 고려해서 선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홍보 모델을 뽑는 면접에서는 다른 면보다 먼저 좋은 인상을 풍기는 지의 여부에 더 중점을 둘 것이다.
대인관계에서도 평균모형의 원리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대인관계에서 ‘힘’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힘’은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 힘은 ‘권력(權力)’에서도 나올 수 있고 ‘금력(金力)’에서도 나올 수 있다. 심지어는 ‘완력(腕力)’에서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인관계에서 제일 효과적이고 우아한 힘은 ‘설득(說得)’의 힘이다. 설득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많은 말을 해야 상대방이 설득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 내용을 들어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평균모형에서 검증된 것처럼, 제일 효과적인 설득은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내용을 한 두 가지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청산유수와 같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눌할 지는 모르지만 간단명료하게 인상적으로 말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는 것이다.
백의종군 중에 통제사로 임명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 쓴 “신은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 볼만 하나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여러 말이 필요 없이 그의 사심 없는 구국충절(救國忠節)의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주는 명문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 대통령의 게티스버그(Gettysburg)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의 2시간 가까운 연설이 끝난 후 그는 2분간의 짤막한 그 연설을 했다. 하지만 2시간에 가까운 연설의 내용은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행사의 핵심적인 의미를 전달한 그의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명언은 영원히 살아남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