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과학기술의 시대에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 필요
2014년 한국심리학회에서 내린 지능의 정의(定意)는 “한 개인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하는 인지적인 능력과 학습 능력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능력”이다. 이 정의에서 ‘한 개인이’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마다 지능에 개인차가 있다는 것, 즉 사람마다 지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인지적인’이라는 구절은 ‘지식의 획득, 저장, 이용 등에 관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총체적’이라는 의미는 지능이 단일 요소가 아니라 여러 요소의 복합체라는 의미이다.
지능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할 점은 지능이 단일 능력인지 아니면 다양한 능력들의 복합체인지에 대한 것이다. 처음 지능검사를 개발한 비네는 지능이 단일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지능은 여러 요인들이 포함된 다차원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이런 추세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 중의 하나가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이다.
스턴버그는 지능을 ‘구성적’ ‘경험적’ ‘상황적’ 지능 등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구성적’ 지능은 주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다. 이 지능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과 결과를 평가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소위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학업 성적이 뛰어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구성적 지능이다.
‘경험적’ 지능은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통합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한다. 이들은 익숙한 과제는 기계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새로운 과제에 몰두할 수 있다. 경험적 지능은 일상적으로 ‘통찰(洞察)’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나다.
‘상황적’ 지능은 현실적인 삶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직관(直觀)’ 또는 ‘육감(六感)’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직관은 추론이나 분석을 통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사태의 본질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육감도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지능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실생활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과제를 현실적인 정보를 얻고, 이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스턴버그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운 지식이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슬기로운’ 사람, 즉 구성적 지능보다는 상황적 지능이 더 우수한 사람들이다. 대인관계를 잘 맺는 것이 행복과 연관이 깊다는 연구 결과들을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또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에서의 우등생이 아닌’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스턴버그보다 지능이 더 많은 능력의 복합체라고 주장하는 가드너(Howard Gardner)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 협응, 음악, 대인 관계, 자기 이해, 자연 탐구 등의 요인들로 지능이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8가지 지능 중 어느 한 지능이 높다고 해서 다른 지능이 자동적으로 다 높은 것은 물론 아니다. 따라서 가드너에 의하면, 전통적인 지능검사에서 측정하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지능이 높다고 해서 대인 관계를 맺거나 자기 이해 능력이 높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능은 이처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도의 정신 기능이다.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가 연합되어 있는 알파고는 가드너의 이론에 따르면 단지 논리-수학적 지능만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보다 복잡한 계산을 빠른 속도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용도에 따라 언어 지능이 뛰어난 ‘통번역(通飜譯)’ 알파고, 운동신경이 예민하고 사물을 섬세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신체 협응(協應)’ 알파고 등 어느 한두 가지 영역에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제2, 제3의 알파고를 만들 수는 있지만, 대인 관계나 자기 이해, 자연 탐구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겸비한 사람보다 우수한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 중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건강하고 건설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데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지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 칼이 주부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범죄자의 손에 쥐어지면 남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이미 ‘왓슨’이라는 프로그램이 암 진단과 항암 치료를 도우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그 자체가 위험하기보다는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딥 러닝(deep learning)’에 의해 사람이 판단 기준을 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하여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하지만 비록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런 컴퓨터를 만들 것인지, 또 만든다면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런 결정은 공학적인 기술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 등 다차원적인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내려야할 고도의 인문학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앞두고 있는 생명공학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는 가공할 과학 기술 시대에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요구된다는 것은 역설(逆說)이다. 결국 미래는 인공지능 컴퓨터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사람 됨됨이’, 즉 인간성의 함양(涵養)에 달려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