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86회)] 성숙한 사고(思考)와 미성숙한 사고
全知할 수 없는 인간들의 관계티격태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
선과 악 이분법적 사고 버려야
대화와 타협 이루어 낼 수 있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13총선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후보자들이나 정당의 모습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이제는 그동안의 갈등을 슬기롭게 수습해야하는, 어쩌면 선거 전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남겨졌다. 그리고 이 과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도 한 단계 더 성숙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권의 미성숙한 민낯을 목도한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모든 변화는 갈등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갈등이 없는 곳에는 변화와 성장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갈등은 변화와 성장을 바라는 욕망이 분출된 것이다. 갈등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불완전성, 즉 완전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우리 모두는 현실의 모든 측면을 다 고려할 수 있을만한 능력이 없다. 우리 모두는 결국 현실의 어느 한 두 측면을 선택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측면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정확하게 안다고 느끼고 자신의 생각이 제일 진리(眞理)에 가깝다고 착각한다. 이 착각은 인간의 한계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전지(全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이 불안한 세상에서 생존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게 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믿는다.
자신의 삶이 불안한 미성숙한 사람들은 세상은 선과 악으로 정확히 나누어진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이들은 아직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미성숙한 사람들은 이 기준점, 즉 정체성이 확고히 정해져있지 않다. 미성숙한 청년들은 마치 계속 구르고 있는 둥근 공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하게 느낀다. 흔들리는 공 위에서 안전을 느끼기 위해 청년들은 두 다리에 지나치게 힘을 주고 평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청년들은 ‘나’와 ‘너’를 구별하고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은 ‘내 편’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네 편’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내 편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호의를, 그리고 네 편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인 적대감을 가진다. 이들은 ‘내 편’과 있을 때에만 안정감을 느끼고,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므로 가능하면 멀리해야 하는 ‘악(惡)’으로 규정한다. 미성숙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선(善)’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심리학자 페리(William Perry)도 흑백논리에 좌우되는 청년들은 이원론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지만 성인은 이 틀에서 벗어나 다원론적 사고를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옳고 그름이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심리학자 시노트(Jan Sinnott)도 역시 성인들은 ‘진리’ 또는 ‘진실’이라는 것을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즉, 지식이란 절대적이고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타당한 견해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는 어린이들에게 ‘서로 똑 같으니 싸운다’라고 어른들이 꾸짖는 것도 결국 다툼의 내용의 옳고 그름보다 성숙의 정도에서 서로 같으니 싸운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절대선이고 너는 절대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는 갈등은 둘 중의 하나가 사라지거나 죽기 전에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하신 공자의 말씀, 즉 “성숙한 사람은 서로 화합을 이루지만 같지는 않고, 미성숙한 사람은 서로 같지만 화합하지는 못한다”는 말씀은 인간관계의 정수(精髓)이다.
대화와 타협을 이루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나’의 입장을 떠나 ‘너’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전지(全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생각도 결국 부분을 통해 전체를 유추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나’와 다른 ‘너’의 견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같은 대상이나 상황도 입장이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는 지름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갈등을 승화시키는 발판이다. 우리는 의견이 서로 대립될 때 상대방에게 “내 입장이 되어보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의 입장이 되는 것에는 인색하다. 이렇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을 ‘자기중심적’이라고 하고, 이 자세가 미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마지막 조건은 갈등의 상대를 ‘적(敵)’이 아리라 ‘동지(同志)’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다. 자신의 의견이 유일하거나 완전한 ‘옳음’은 아니지만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성숙한 사람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는 나를 없애려는 적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새는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거나 ‘수레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는 속언도 따지고 보면 홀로 완전해질 수는 없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불완전한 우리의 삶에서 갈등은 없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의견을 갖거나 갖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갈등을 없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변화와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등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진정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양보는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장의 잠재력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이 잠재력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혜를 가르치고 모아야 할 때이다. 한 개인이나 조직의 ‘격(格)’은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