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 아닌지 여유를 가지고 되돌아 볼 필요
예를 들어 붐비는 차 안에서 한 남성의 손이 여성의 몸에 닿았다. 이 경우 남성의 의도에 대해 여성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붐비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행동이라고 추론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을 만졌다고 추론하면 당연히 거칠게 항의할 것이다. 남성의 손이 여성에 닿았을 때의 반응은 자동적으로 정해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상대의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은 그 행동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주관적 해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나의 감정이 결정되고, 그 감정에 걸맞은 반응이 나오는 사뭇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거친다. 즉, 상대의 행동 → 나의 주관적 해석 → 감정 → 맞대응의 연쇄고리에 의해 나의 반응이 결정된다.
우리가 상대방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원인이 행위자의 내적 요인들, 즉 태도, 성격, 동기 혹은 감정 등에 있다고 지각하는 것을 ‘내부귀인’이라고 한다. 반면 행동의 원인이 외적 요인들, 즉 상황적 압력이나 강요, 사고, 날씨 등 행위자로서도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있다고 지각하는 것을 ‘외부귀인’이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남성의 행동에 대해 비좁은 환경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여성이 외부귀인 하는 경우와 남성의 엉큼한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내부귀인 하는 경우와는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귀인은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오해 중에 귀인 과정에서 일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오해를 ‘인지적 편향’이라고 부른다. ‘인지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렇게 귀인하려는 특별한 동기가 없지만 자연적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이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대방의 행동의 원인을 지나치게 내부귀인 하는 현상이다. 즉, 상대방의 행동이 그의 성격이나 의도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 현상이 너무나 보편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기본적 귀인오류’라고까지 부른다.
이와 덧붙여서 대인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인지적 편향은 ‘행위자-관찰자 편향’이다. 이 편향에 의하면, 행위자는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외부귀인 하고, 반대로 이런 행위를 보는 관찰자는 상대방의 행동의 원인을 내부귀인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전혀 일면식도 없는 우연히 마주친 여성을 살해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범인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런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도 꼭 필요하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인은 외부귀인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은 그가 ‘조현증’이라는 정신병을 앓은 경력이 있다고 내부귀인 한다. 큰 정치적 격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과거의 한 대통령은 “국가가 누란의 의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라고 외부귀인 했다. 그리고 자신은 전혀 정권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외부귀인 하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당시 국가가 그렇게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고, 정권욕이 불타는 그가 변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부귀인 한다. 그 후 그와 같은 불행한 군인은 안타깝게도 두 번이나 더 나왔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을 행위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도록 상황을 변경시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공부를 하고 있는 어린이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 대답은 대략 “엄마가 하라고 하니까” “시험을 잘 보아야하니까” 등 외부귀인 했다. 이번에는 동일한 어린이 앞에 거울을 놓고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즉 행위자의 관점을 관찰자의 관점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하자,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공부가 재미있어서” 등과 같이 내부귀인을 했다.
귀인 현상은 상담에서도 응용된다. 4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자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남편 때문에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건강을 염려해서 술을 자제하라는 당부를 수없이 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 좋건 싫건 관계없이 자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해주기는커녕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고 바가지를 긁는 아내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자신을 이해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변명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이 커져갔다.
이 부부에게 ‘행위자-관찰자 편향’을 설명해주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보도록 유도했다. 남편에게는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자신의 행동을 아내의 입장, 즉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도록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의 입장에서 술 마시는 행동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표현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서 이 부부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 상대방을 염려해주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역할 바꾸기’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본의 아니게 갈등을 빚고 평행선을 달리는 관계가 있다면 ‘혹시 내가 너무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한번 여유를 가지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갈등 상황을 바라보면 서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대인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역지사지’ 즉, 입장을 바뀌어 생각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이다.
귀인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미성숙한 어린이일수록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아픔과 실수를 경험하면서 점차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성숙의 과정을 거쳐 간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인지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