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취중진담'보다 맑은 정신으로 속마음을 표현해보자

글로벌이코노믹

유통경제

공유
0

'취중진담'보다 맑은 정신으로 속마음을 표현해보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96회)] 술은 감정의 배출구

적당한 음주는 약이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패가망신
억눌린 감정 풀려다 '사고'
인간관계에 긍정적 측면 있지만
예의를 지키며 속마음 전달하는
새로운 문화로 바꾸어 가야

이제 곧 추석이다.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즐거운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민족의 대이동’을 할 것이다. 아무리 오가는 길이 힘들어도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과 친지를 만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한국 문화의 정수(精髓)이기도 하다. 이렇게 즐거운 명절과 친지와의 만남에는 으레 술이 곁들여 진다. 아마도 이번 추석에도 정겨운 만남이 있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맛있는 안주가 그득히 놓여있는 술상이 차려질 것이다.

구태여 명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약주(藥酒)’라는 표현도 있듯이,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이롭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하는 ‘반주(飯酒)’는 소화를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인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음주량도 급격하게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밤늦은 시간에 술집 밀집 지역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된 젊은 여성들을 보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술 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왜 술을 많이 마실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제일 큰 것은 음주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우선 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고 동시에 너무 쉽다.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처럼 주위에 술집이 많은 나라도 드물고, 술을 구하기 쉬운 나라도 없다. 편의점을 포함한 거의 모든 가게와 음식점에서 술을 판다. 술을 팔지 않는 음식점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또 하나는 술마시고 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너그럽다. 웬만한 ‘주정(酒酊)’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소위 주폭(酒暴)이라고 불리는 정도로 만취해 파출소에 가서 갖은 난동을 부려도 취객(醉客)이라며 보호해 준다. 술 먹고 범죄를 저지르면 “술 먹은 게 죄지, 사람이 무슨 죄가 있나?” 하며 처벌을 낮춰주기 때문에,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으레 재판정에서 하는 상투어가 됐다. 근무 중에 술을 마셔도 ‘술김에 일 한다’는 말을 내세워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용한 봉산탈춤. 양반을 능멸하는 내용이나 첩을 둘러싼 부부간 갈등을 다루며 치유의 역할을 했다. /사진=봉산탈춤보존회이미지 확대보기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용한 봉산탈춤. 양반을 능멸하는 내용이나 첩을 둘러싼 부부간 갈등을 다루며 치유의 역할을 했다. /사진=봉산탈춤보존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술에 너그러운 문화가 됐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나라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 나라의 중요한 공통점의 하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비교적 내성적이고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대인관계를 원활히 하고 의사소통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음주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사회적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원칙적으로는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건강한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사실대로 표현하면 인간관계를 해칠 위험이 있다. 특히 상대방에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자칫 잘못 표현했다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위•아래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수직적 문화에서는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교육받는다. 더군다나 아랫사람은 쉽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부정적 감정은 더더군다나 표현해서는 안 된다. 아랫사람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화도 나고 섭섭하기도 하고 윗사람이 미울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당연히 참아야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윗사람을 공손히 대해야 한다.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참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도리이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표현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을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참고 억제할 수 있는 감정의 양은 정해져 있다. 이 한도 내에서는 참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으면 자신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소위 ‘뚜껑이 열리면’ 자신도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평소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과격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주위에 ‘술 먹으면 개가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먹지 않았을 때와 술을 먹었을 때의 행동이 너무나 판이하다. 술을 안 마셨을 때는 매우 내성적이고 지나치리만큼 남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술을 마셨을 때는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소위 ‘주사(酒邪)’가 심한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나 적당한 방식으로 마음속에 쌓여있는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감정의 배출구(排出口)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수직적인 사회에서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도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하는 문화에서는 시기와 장소를 정해 폭발하지 않도록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문화적 장치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 억눌려 살던 하위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위 ‘탈춤’을 통해 억눌렸던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용하였다.

널리 알려진 ‘봉산탈춤’이나 ‘하회탈춤’ 등에는 예외 없이 양반을 능멸하는 내용이라든지 첩을 둘러싸고 생기는 부부간의 갈등을 다루는 내용이 들어있다. 탈춤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는 양반이나 남편은 조선시대에서 윗사람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엄격한 ‘칠거지악(七去之惡)’의 굴레에 갇혀 ‘첩살이’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이미 숫검정이처럼 새까맣게 다 타버린” 부인의 멍든 가슴은 탈춤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나마 풀어야 살 수 있었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는 감정의 배출구를 마련해주지 않고 억압만 하면 쌓여있던 감정이 무서운 힘으로 폭발하여 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배계층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을 쓰고 비록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일지언정 양반들에게 당한 억울한 심사를 조금이라도 풀어놓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탈춤이 매일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기나 장소에서만 가능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쌓인 억눌린 감정을 쉽게 풀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술이다. 엄격한 수직 사회에서 술을 마시면서 ‘술김을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음주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맑은 정신에 표현했다면 당연히 인간관계를 해칠 속내를 ‘취한 척’하며 표현한다. 그리고 “취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둘러대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문화적 행동양식이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하는 것이 술이기 때문에 술 마시고 한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대하는 문화가 덩달아 발달하게 된다. 만약 술 취해 한 행동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처벌한다면 사회 자체를 유지해주는 술의 긍정적 기능 자체가 효과적일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술을 마시면서도 실수할까봐 두려워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술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드는 다른 문화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술을 마시는 것은 제일 비용이 적게 드는 ‘속풀이’의 수단이다.

적당한 음주는 약(藥)이지만 과도한 음주는 패가망신(敗家亡身)의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대명사인 ‘금주’를 부르짖기보다는 맑은 정신으로도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노력을 진작시킬 수 있도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벼르고 벼르다가 “술 한 잔 하자”고 말문을 여는 대신 예의를 지키며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