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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가져온 가족 간 갈등 '易地思之(역지사지)'로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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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가져온 가족 간 갈등 '易地思之(역지사지)'로 털어버리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97회)] 급변하는 한국 문화

갈등 덮어두거나 억제하지 말고
각자 상대방의 입장서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의외로 쉽게 풀려
가부장 문화에 익숙한 부모세대
며느리 세대의 양식 이해한다면
'명절증후군' 나타나지 않을 것
민족의 명절 추석을 보내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명절의 후유증을 빨리 걷어내야 할 시간이다. 추석을 명절이라기보다 휴일이라는 개념을 가지는 젊은 사람이 점차로 많아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추석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조상묘에 성묘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가족들끼리 밀린 이야기를 하는 정겨운 명절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이 이번 추석을 보내면서 한국 문화가 빨리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 ‘문화’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한 집단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 특징’이라고 정의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이 처한 환경에 제일 잘 적응하도록 형성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최적의 행동 양식도 따라서 변하게 마련이고 즉 문화도 변하게 마련이다.

한국 문화가 급격히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환경이 최근에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는 필생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은 주기적인 생멸(生滅)의 역사라고 규정하면서 문명의 추진력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특정 문화에 대한 도전은 다양한 방향에서 올 수 있지만 한 문명의 흥망성쇠는 다양한 도전에 얼마나 적절한 응전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문화가 급격히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도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응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당연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두 축은 ‘아버지-아들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와 ‘관계중심’의 문화이다. ‘아버지-아들’ 중심축 문화의 제일 큰 특징은 연속성(連續性)이다. 아버지는 동시에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할아버지는 고조할아버지의 아들이다. 즉, 자식의 아버지는 동시에 아들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누구의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조상과 자손을 연결해주는 한 고리이다. 당연히 이 문화에서 아버지의 제일 큰 도리는 아들을 생산해서 대(代)를 잇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媤家)의 며느리가 된 여성의 제일 큰 의무도 역시 아들을 생산해 조상과의 연속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추석의 제일 큰 의미는 바로 조상과 자손이 만나서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는 것은 자손의 도리이자 조상과의 만남을 통해 대(代)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식(儀式)이다. 아버지-아들 중심의 문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여자가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어머니, 딸, 며느리의 존재는 ‘칠거지악(七去之惡)’ ‘부창부수(夫唱婦隨)’ ‘삼종지도(三從之道)’ 등의 윤리로 철저히 부정된다. 폐백(幣帛)은 당연히 신부만 시댁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시집의 귀신’으로 살아야 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사진=뉴시스
한국 문화의 급격한 변화의 요체는 바로 ‘아버지-아들’ 중심에서 ‘남편-부인’ 중심의 문화로 변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가부장(家父長)적 문화도 점차로 약해져가고 실질적으로는 ‘가모장(家母長)’적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집안에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부계(父系)의 영향력은 점차로 약해져가고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계(母系)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간다. 이 사회적 변화의 백미는 2005년에 제정된 ‘호주제 폐지’이다. 그동안 호주제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여성 차별적 제도라고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가부장제이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았는데 결국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 변화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의견을 무시하고 여성의 능력을 사장시키면 거세게 불어닥치는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할 수 없는 환경을 맞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변화하는 것이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의하면, 결혼 3년 차인 김모씨(31•여)는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시댁에 가는 문제로 남편과 며칠째 냉전을 벌였다. 김씨는 남편에게 “항상 시댁을 먼저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집부터 가자”고 했으나 어김없이 남편은 “다른 가정도 다 시댁부터 먼저 가지 않느냐. 처가는 다음주에 가자”는 답변만 돌아왔다.또 다른 결혼 4년차 주부인 안모씨(33•여)도 추석을 앞두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연휴 내내 쉴 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느라 허리를 펼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안씨는 “대가족 식사를 매끼 준비하고 시댁 어르신들 눈치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명절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명절 직후 갈라서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명절 전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많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해 추석연휴가 있던 9월과 그 다음 달인 10월의 이혼 접수 건수는 3179건에서 3534건으로 늘어났다.

명절 전후로 늘어나는 가족 간 갈등은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 간, 남녀 간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에 더 익숙한 부모 세대의 관점에서는 명절에 며느리가 시집에 와서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인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다 같은 부모인데 남편의 부모와 자신의 부모에게 다르게 대접하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다 보니 ‘명절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병이 생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부모와 부인 사이의 문화적 충돌을 적절히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편도 들지 못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거나 한 쪽 편을 들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문화 간의 충돌을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먼저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다만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서툴고 결과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극단적인 결과를 빚게 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하나다”의 문화에서는 ‘같음’이 옳은 것이고 ‘다름’은 틀린 것이다. 이와 같은 ‘가족동일체’의 문화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길러지기 어렵다. 대화와 타협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갈등은 덮어두거나 억제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속에 잠복하고 있다가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갈등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여야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하여야 한다. 며느리를 이해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명절에 힘들게 일하지 말고 친정에서 푹 쉬게 하고 싶은 딸도 시집에서는 며느리라는 것만을 잊지 않으면 된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편하고 좋은 친정어머니도 올케에게는 시어머니일 뿐이다.

대화와 타협은 각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된다. “자식이 오래 있다 갔으면 하는 시어머니도 맞고, 빨리 시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며느리도 맞다.” “빨리 고향에 가고 싶은 남편도 맞고, 친정에도 들르고 싶은 부인도 맞다.” 다만 서로가 살아가는 마음속의 세상, 문화가 다를 뿐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명절증후군’은 앞으로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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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