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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문'은 '정(情)'과 '우리의식' 의존한 참담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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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문'은 '정(情)'과 '우리의식' 의존한 참담한 결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00회)] ‘우리 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 일체감 강조 땐
공적·사적 영역이 모호해지고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력 상실
문화는 '양날의 칼' 동시에 존재
긍정적 기능하던 제도나 관습도
시대에 맞게 변화 이루어내야
지금도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접했던 문장이 또렷이 떠오른다. “I am Tom(나는 톰이다).” “You are Mary(너는 메리이다).” “I am a boy(나는 소년이다).” “You are a girl(너는 소녀이다).” 선생님을 따라 크게 읽어내려가면서 참 신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나를 나타내는 ‘I’는 일반대명사이지만 유일하게 문장 가운데에서도 대문자로 쓴다는 것을 배웠다. 그만큼 서양에서는 내가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도 생각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제일 먼저 나오는 내용은 “나” “너” “우리”이다. 처음 배운 영어 문장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쉽게 드러난다. 즉, 처음 배우는 우리 말에는 ‘나’와 ‘너’는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가 없다. 요즘 말로 다시 말하면 각 개인의 정체성(正體性)이 드러나지 않는다. 영어에서는 ‘나’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Tom’인지 ‘Mary’인지, 또는 소년인지 소녀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대조적으로 우리말에서는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오히려 분명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우리’ 가 개별적인 ‘나’와 ‘너’보다 더 중요하다. 나와 너는 단지 ‘우리’가 되기 위한 요소에 불과하다. 이런 문화에서는 ‘나’와 ‘너’가 누구인지 분명하면 오히려 ‘우리’가 되는 데 더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 관습을 영어로 번역해보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영어로는 ‘my school’ ‘my mother’라고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우리 학교’ ‘우리 어머니’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한다. 나의 어머니가 동시에 너의 어머니가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우리’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외국 사람들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my wife’라고 해야 할 경우에 ‘우리 아내’라고 표현한다. 잘못 오해하면 마치 우리나라가 일처다부제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우리 문화에 익숙해지면 이것이 ‘나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로 맺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문화는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제일 적합한 방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보다 ‘우리’를 더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의미는 개인으로보다는 집단으로 있을 때 더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문화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가족주의’도 역시 우리의 지난(至難)한 역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반만년을 살아왔다. 그 긴 기간 많은 침공을 받고 사대 외교를 해야만 국가의 존립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삶을 이어왔다. 동시에 철저한 신분제도에 곤란한 생활을 강요당했다. 또 탐관오리와 지주들의 등쌀에 시달리면서 “뼈골빠지게” 고생하면서 살아오면서도 멸망하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 까닭이다.

최순실게이트는 한국 전통 문화의 대표적 특성인 정과 우리의식의 부정적 측면이 과도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이 촛불집회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최순실게이트는 한국 전통 문화의 대표적 특성인 정과 우리의식의 부정적 측면이 과도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이 촛불집회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족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조직보다 ‘우리’라는 정서가 짙고 ‘정’이 깊은 조직이다. 문화심리학자 고 최상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정은 네 가지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정이 들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접촉하며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歷史性). 특히 함께 고생할 때 제일 빨리 정이 든다. 또한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야 한다(同居性). 그리고 그 관계가 친근하고 친밀하여야 한다(多情性). 마지막으로 서로 흉허물이 없어야 한다(無批判性). 이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조직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함께 하는 사이인 것이다.

‘전 국민의 가족화(家族化)’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초면의 사이이지만,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는 ‘아저씨’, 여자에게는 ‘아주머니’라는 친족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음식점에서 봉사하는 여성을 호칭할 때도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친구를 ‘이모’라고 소개한다. 가족 이외의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곧 이 사람에 대해 가족처럼 느끼고, 이 사람과 가족처럼 희생적인 상호밀착이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살아가다보면 당연히 나와 너를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는 것보다는 ‘우리 편’을 만들어 끈끈한 가족 같은 관계로 대응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우리 편이 있으면 남이 쉽게 무시하지도 못하고 또 남이 피해를 주기도 어렵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외로울 때 의지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즉, 우리 편이 있으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불안하고 강퍅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우리 편’이 되면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질 위험이 따른다. 나와 너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너-나 일체감’을 강조하게 되면,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잃게 되고 합리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상실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일단 ‘우리’로 관계를 맺으면 당연히 “우리끼리”라는 편가르기가 발생한다. 우리 편에게는 더없이 따뜻한 정을 느끼고 가능한 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또 그렇게 하도록 같은 편들이 요구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우리 전통 문화의 대표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정’과 ‘우리의식’의 부정적 측면이 과도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겼다”고 시인하면서 ‘대국민사과’를 할 정도로 온 나라가 분노와 허탈감으로 들끓고 있다. 일의 결말에 대한 법률적 정치적 판단은 차치하고, 어려울 때 도와준 ‘우리 편’에게 과도하게 의존했던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다.

또 하나 요즘 한국 사회를 강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소위 ‘김영란법’도 그 근본 취지는 상대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 각종 편의를 제공받고자 하는 음험한 의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법이 서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을 나누고 살던 우리의 미풍양속마저 해칠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것은 이제는 우리의 생활이 더 이상 ‘우리 편’을 만들기 위해 불공정한 거래를 하지 안해도 될 정도로 발전하였고, 동시에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 편’ 만들기의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의 발로일 것이다.

어느 문화나 ‘양날의 칼’처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한때는 긍정적 기능을 맡았던 제도나 관습도 세상이 달라지면 부정적 기능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절에는 이웃과 서로 ‘품앗이’하면서 상부상조하며 사는 것이 제일 바람직했다. 친밀한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서는 이웃의 잘못을 적당히 ‘눈감아’ 주는 것이 필요하였고, 나의 편의를 위해 때로는 부정 청탁을 하는 것이 삶의 지혜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문화로는 진정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문화는 현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항상 최적의 대응을 하기 위해 변하게 마련이다. 적절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그 변화를 이루어내는지의 여부에 한 집단의 생존이 달려있다. 과거에 옳았다고 지금도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의 긍정적 측면은 극대화하고 부정적 측면은 극소화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