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01회)] 다시 희망을 노래하며
국가 공권력은 예측 가능하고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적용할 때
개인의 이익 포기하고 의무 이행
희망은 신뢰할 때 주어지는 선물
또 다시 불신을 딛고 일어서야
'제2의 한강의 기적' 만들 수 있어
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ison•1902~1994)은 생애 초기 일 년 동안 갓난아이가 키워야 할 자아는 기본적 신뢰(信賴)라고 하였다. 신뢰는 ‘믿을 신, 힘입을 뢰’의 한자말이다. 한자어의 뜻은 “믿어서 힘을 얻는다”라는 것이다. 믿으면 힘을 얻는다. 에릭슨의 정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 의하면 신뢰는 “다를 사람을 믿을 수 있고 또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런 확신이 생기면 갓난아이는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부모나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아기들이 돌보는 이에게 신뢰감을 갖게 되면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아기가 엄마에 대한 신뢰감을 나타내는 첫 번째 표시는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나친 불안이나 걱정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모를 신뢰하게 되면 아기들은 부모가 없더라도 잘 견뎌낸다. 반대로 돌보는 이가 믿을 만 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아기들은 떨어지려 하지 않고, 만일 떨어진다면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엄마가 일관되게 행동하면 아기는 엄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젖을 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배고픈 것을 잠시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조금 지나면 엄마가 젖을 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엄마가 따듯한 행동으로 아기를 대하면 자신이 보호받고 있고, 엄마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느낌을 가진다. 이처럼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고 따듯한 엄마의 행동은 아기에게 평생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신뢰를 발달시켜 준다.
우리가 신뢰를 발달시키는 순서는 먼저 ‘너’, 즉 나를 도와주는 엄마를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갓난아기는 아직 어머니와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점차로 엄마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과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엄마가 자신을 잘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너’에 대한 신뢰를 발달시키면서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자신을 믿게 된다. 즉,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엄마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나’에 대한 신뢰를 발달시킨 아기는 이제는 너와 나를 뛰어넘는 ‘우리’에 대한 신뢰를 발달시킨다. 자신을 도와주는 것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나 가족 그리고 이웃들도 모두 자신을 돌보아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너와 나에 대한 신뢰를 발달시킨 아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끗 웃으며 자신을 사랑해줄 수밖에 없는 행동을 자주 하면서 신뢰의 선순환을 만들어간다. 이제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더 큰 신뢰를 만들어나간다.
신뢰를 잘 발달시킨 어린이들은 ‘희망(希望)’이라는 선물을 가지게 된다. 희망은 ‘좌절이나 분노, 실망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이다. 아동들로 하여금 외부세계에 나아가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일견 허황되어 보이는 희망은 결국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 아름다운 꽃이다.
만약 부모와 일관성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면 어린이는 불신을 키우게 된다. 불신도 일종의 믿음이다. 다만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믿게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너(어머니)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된다. 결국 너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이런 아기들은 부모가 옆에 있지 못하면 심한 공포심을 느낀다.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서 언제든지 자기를 돌보아줄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릭슨에 의하면, 이 단계에서 신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신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신 또한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기들은 신뢰와 함께 불신도 경험해야 한다. 신뢰와 불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쪽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다 있어야 한다. 만일 신뢰만 발달시키고 불신을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잘 속기 쉬운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불신할 줄 알아야 신뢰할 수도 있다. 다만 신뢰와 불신의 비율이 중요하다. 즉, 불신보다는 더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보면 신뢰는 불신의 바탕 위에서 먹고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발달시켜야 할 자아의 능력을 ‘기본적’ 신뢰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신뢰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뢰는 후에 발달하게 될 다른 자아의 능력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다. 아기 때에 신뢰를 발달시키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지속적으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신뢰하지 못한다.

촛불을 켜고 분노하는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표시이다. 하지만 국가를 믿지 못하면 국민들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다시 불신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또다시 희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 다시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지자’는 구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희망은 신뢰할 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위대한 민족이다. 지금 일시적으로 불신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 불신의 먹구름을 딛고 다시 신뢰를 회복하면 거대한 대지와 같은 신뢰의 기반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