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의견에 토 달았다가 면직
장관·비서관 말 못하게 만들어
국가·국민에 커다란 해악 끼쳐
이런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야
재니스는 이런 집단사고가 외부의 의견을 차단할 수 있는 상당히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거나, 강력하고 역동적인 지도자가 있는 집단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지도자들은 문제에 대해 특정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에 대해 강하게 주장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집단원들은 반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편으로는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에서 지도자는 자기의 의견에 반대하는 구성원을 집단의 응집력을 해치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집단의 결정에 회의를 품은 구성원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 만약 집단에 계속 남아있으려면 자신의 의구심은 하찮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거나 표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게 된다.
그에 의하면, 이런 집단사고가 미국이 외교적 사안에 내린 몇몇 재앙적 사건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1941년의 일본의 진주만 침공사건, 1960년대 쿠바 피그만 침공사건, 그리고 1970년대의 월남전쟁의 확전과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이 바로 집단사고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이 중에서도 재니스가 특별히 집단사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피그만(The Bay of Pig) 침공사건이었다.
피그만 침공사건은미국 케네디 행정부가 1961년 4월 초 공산주의를 표방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2016)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쿠바인 망명자들로 침공군을 조직해 쿠바 남부 피그만 해안에 상륙시킨 사건이다. 미국은 침공을 시작하면 쿠바 민중이 봉기해 카스트로 정권을 쉽게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쿠바 민중은 카스트로 혁명군을 지지했고, 작전은 나흘 만에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후에 당시 정황을 조사한 결과, 정부 수뇌부는 얼토당토않은 침공계획을 짰던 것으로 드러났다. 쿠바의 민심에 대해 오판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피그만과 재집결 장소 사이에는 넓은 늪지가 펼쳐져 있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침공군은 늪지에 갇혀 꼼짝도 못하다가 포로가 됐다.
피그만 침공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는지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바보는 대통령 혼자만이 아니었다. 당시 피그만 침공을 결정한 수뇌부들 모두 바보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 결정에 참여했던 슐레진저(ArthurSchlesinger,Jr. 1917~2007)는 훗날 다음과 같이 회고하면서 자괴감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토론 분위기 때문에 소극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그 터무니없는 계획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
소수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일군의 대학생들에게 가설적 문제를 토론하도록 하였다. 몇 집단은 ‘닫힌(closed)’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훈련된 지도자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다른 몇 집단은 ‘열린(open)’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훈련된 지도자에 의해 운영되었다. 결과는 ‘열린’ 지도자가 운영하는 집단이 유용한 정보를 더 많이 이용하였고 더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도출하였다.
이런 일이 물론 미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수백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했고, 300여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았다.
이 참사가 일어난 후 열린 국무회의 당시 상황을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을 해체하는 등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는 의견을 내자 유 전 장관이 “대통령이 정부조직을 바꾸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어떻게 내각의 국무위원들하고 한번 상의도 안 하고 혼자 결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그러면 내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얘기를 다 들으라는거냐”고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그 이후 사의를 표명했고, 공식적으로 그해 7월 면직됐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 유 장관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내고, 대통령이 다시 원래 취지의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의 장관들이 대통령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아 유 장관의 행태는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후임도 결정되지 않은 채 장관직에서 면직됐다.
박대통령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에게 ‘레이저 광선’과 같은 눈빛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기업체의 경영진 교체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청와대 근무자들은 다 알겠지만 대통령이 말씀하실 때 그렇게 토를 달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유 전장관이 묘사한 국무회의 풍경과 수석비서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분위기는 집단사고가 일어나기 제일 적합한 조건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지도자와 그에게 맹종하는 집단원들, 그리고 자신들끼리의 강한 유대감과 외부의 여론에 귀 닫고 자신들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불통’의 분위기. 지금 우리는 국정을 논하는 국무회의에서 집단사고가 일어나면 얼마나 국가에 큰 위해를 주는지 참담한 심경으로 목격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된 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 부처의 전직 현직 장관과 차관이 동시에 구속되어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집단사고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상례적이며 사소한 결정은 시간 절약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강력한 지도자가 운영하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도 탁월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케네디 행정부가 국가적 위기에서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단을 운영하면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고 소위 ‘집단지성(集團知性)’을 이용할 수 있는지 그 조건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재니스는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도자는 제안된 결정에 대해 각 집단구성원이 반대와 의구심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비판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지도자는 토론 과정에서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집단구성원들이 모두 의견을 개진한 후에 자신의 선호(選好)와 기대를 말해야 한다. 셋째, 집단을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각 집단이 독립적으로 토론한 후 모여서 차이에 대해 조정해야 한다. 넷째, 때때로 외부의 전문가를 초대해서 집단 토론에 참여시키고 집단원들의 견해에 대해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 만남에서 최소한 한 사람은 집단의 의견에 도전하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도록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집단원들이 다양한 대안을 고안할 수 있고 만장일치라는 허위의식에서 벗어나며 적절한 정보를 고려할 수 있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사고로 인한 참담한 결과 때문에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런 실수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