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자의 힘에 휩쓸리기보다
새로운 견해·독특한 견해 가진
소수자 영향력에 관심 가져야
활발한 토론 없는 국무회의
반대자 용인 못하는 분위기
경직된 체제가 갖는 해악 절감
소수자가 다수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동조(同調)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힘이 ‘전능(全能)’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회의는 결국 동일한 결론을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요한 사회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 그리고 학문의 발전 등은 다수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기독교나 불교 등 세계적인 종교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나치즘도 처음에는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처럼 강력한 소수가 없다면 혁신이나 사회변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수자의 힘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소수자의 영향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때로 새로운 견해나 독특한 관점을 가진 강력한 소수가 다수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비동조자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양식이 매우 중요하다. 소수의 주장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수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논리가 정연해야 하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소수자가 지속적으로 이런 행동을 보이면 다수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소수자인 사람들이 다수자들보다 호감이 덜할 경우에도 그들은 더 정직하고 유능한 것처럼 보인다. 소수자가 계속 자신의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다수자들은 과연 자신들의 견해가 정확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는 약간의 다수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바꾸면서 소수자 쪽으로 ‘회심(回心)’하게 된다. 만약 여러 명의 구성원들이 견해를 바꾸면 소수자는 새로운 다수자가 된다.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를 하는 소수자가 끊임없이 나타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악마의 대변자(代辯者, devil's advocate)’ 제도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악마의 대변자’는 한 사안에 대해 열띤 논의가 이뤄지도록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발표하는 사람이다. 원래 이 사람을 악마라고 부르는 이유는 가톨릭성인(聖人) 추대 심사에서 추천 후보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악마(惡魔)’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활성화시키거나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모색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톨릭에서 성인이 오랜 세월 동안 신자들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이런 엄정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만약 성인이 쉽게 될 수 있다면 성인의 가치나 존경의 강도는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악마의 대변자’의 역할은 그 후보자가 성인이 될 수 없는 결격 사유를 밝혀냄으로써 쉽게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없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치열하게 대상자가 성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 반대를 한다. 만약 이들의 반대를 정당한 사유를 들어 꺾을 수 없다면 당연히 그 대상자는 성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는 사람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성인’이라는 고귀한 지위의 정통성과 성스러움을 굳건히 지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악마의 대변자는 사실상 선을 지키는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서열의식이 강한 가부장적 문화에서는 소수의 반대자나 악마의 대변자 제도를 실제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가부장적 문화는 수직적 문화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문화를 익히는 교육의 장인 가족 내에서도 수직적 관계가 강조된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형제들 사이에도 형과 아우의 관계가 강조된다. 형은 나의 윗사람이고 동생은 나의 아랫사람이다. 따라서 부모가 안 계실 때에는 형이 부모의 역할을 맡아서 동생들을 돌보고 키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동생들은 형을 부모처럼 여기고 순종하고 존경해야 한다. 가족관계에서 배태된 서열의식은 사회의 모든 조직에 전파되고 일반화된다.
가부장적 문화에서는 또한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의사결정 과정을 선호한다. 모든 조직원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화목’한 조직이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이 조직은 문제가 있고 서열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조직으로 간주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당연히 서열상 제일 정점에 있는 사람의 의사가 모든 조직원의 의사가 된다.
이런 가부장적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뉴스로 방송되는 국무회의 모습이다. 우리 방송에서 보여주는 국무회의의 모습은 하나같이 대통령 혼자 발언하고 다른 국무위원들은 모두 머리를 숙인 채 수첩에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고 있거나 경청하고 있다. 필자는 아직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필자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활발하게 토론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직 장관들의 회고담이나 흘러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런 활발한 토론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한 장관이 자신의 부처 고위공직자를 사직시키라는 청와대의 명령을 받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실세 수석비서관이 “그냥 하라는 대로 하세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 분위기가 어떤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자신이 연설하는 데 졸았다는 이유로, 또 다리를 꼬고 앉았다는 이유로 수족같이 부리던 고위 측근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는 김정은의 북한에서도 모든 수행원들이 수첩을 꺼내들고 적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지금 반대자를 용인하지 못하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가지는 해악을 절감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반대자와 소수자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이 부모와 다른 의견을 자유스럽게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교사와 다른 의견을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도록 교실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교사도 교장의 방침에 대해 언제든지 다른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든 조직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수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