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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권용상 안무의 『홍길동』…우리춤의 해학과 발전가능성 예시한 한류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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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권용상 안무의 『홍길동』…우리춤의 해학과 발전가능성 예시한 한류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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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제20회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 페스티벌’이 초청한 권용상(춤다솜무용단 회장, 무용학 박사) 안무의 『홍길동』은 안무가 특유의 기발한 발상이 빚어낸 ‘권용상 해학’의 빛나는 한 편이다. 권용상은 창작춤 『홍길동』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을 이롭게 하는 ‘모든 사람들의 총합체’의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홍길동은 특정인물이 아닌 ‘부모, 신분을 떠나 정의에 편에 서는 모든 사람들, 한 길을 가는 예술가들’을 일컫는다.

안무가는 부조리한 제도와 남용된 권력이 독버섯처럼 퍼진 시절의 하 수상함을 목도하고 무용 『홍길동』을 창작하였다. 자신이 영웅적 행위를 하든가 영웅의 탄생을 절절히 바랄 때, ‘홍길동’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법이다. 홍길동은 연산군 조 실존인물인 장길산, 임꺽정과 함께 조선 시대의 3대 도적으로 꼽힌다. 소설 홍길동을 창작한 허균처럼 사회비판적 『홍길동』은 날카롭고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기본 3시제를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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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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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대가없이 정의로운 일을 한 뒤, 교훈만 남기고 구름처럼 떠나간다는 『홍길동』은 프롤로그(망각, 현재의 우리 사회), 에필로그(율도로 가는 길, 미래)를 포함하여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안무가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의 너른 공간을 잘 활용하여 공간감을 최대한 살리고, 작곡가 박기백의 음악, 정진용의 라이브 밴드 연주와 사운드를 ‘프롤로그, 작품의 중간, 에필로그’에 사용, 춤과 조화를 꾀하며 현장감을 추구한다.
프롤로그: ‘망각’, 현재의 우리 사회, 짙은 밤안개를 타고 고뇌에 찬 길동(권용상)은 이미지적 현신(現身)을 한다. 긴장감이 이는 가운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소시민들을 타고 오르는 권력들이 음습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정도를 망각한 사회는 치유 불가의 지경에 이른다. 안무가의 이전 작품들의 경향에 견주어 이 진지함은 반전을 노리는 극적 장치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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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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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1장: ‘흑운이 만천 천불견’(黑雲而 萬天 天不見,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니 하늘이 보이지 않음), 요괴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봉산탈춤 장단에 맞춰 제2과장 팔목중춤 셋째목중에 나오는 목중대사에서 소제(小題)를 뽑아 안무가 특유의 과장과 익살이 스며들게 하고, 빠르고 세련된 연희적 춤 속에 자신의 주장을 담는다. 중첩의 의미로 다가오는 안개가 침묵을 유도한다는 것은 이 작품에서는 기만임을 밝힌다.

2장: ‘분신사바’, 과거를 되살린다면 오늘의 홍길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구신사마 구신사마 오이테 구다사이’, ‘홍선배...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더니’, 그를 불러 영웅으로 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만화적 상상으로 핀다. 걸음을 걷고 있는 기억의 환상을 쫓아 가다보면 파편으로 흩어지는 소란들이 멈추질 않는다. 안무가는 현재적 실천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과거는 추억으로 존치시키고, 소멸로 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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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3장: ‘한줌의 빛’, 밝고 희망찬 현재가 펼쳐진다. 그들만의 나라는 우리들의 나라로 바뀐다. 모두를 기쁘게 하는 바람은 향긋하게 불어오고 하늘거리는 노오란 나비가 떼 지어 날아가며 손짓한다. 이제 이 기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안무가는 강요하지 않고, 놀이친구로 세상을 대하면서 홍길동처럼 ‘자신은 없었음을, 무(無)인 것을, 바람인 것’을 깨닫는 것이 나비가 되고 빛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에필로그: ‘율도로 가는 길’, 소설 속 길동은 병조판서로서 자신의 한을 푼 뒤 무리를 이끌고 중국의 남경으로 가던 중, 수려한 율도국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두 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왕이 되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 무용에서 길동은 노오란 나비 떼를 따라 햇빛보다 따사로운 달빛이 비추는 율도에 도착한다. 안무가 권용상은 『홍길동』을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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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상 안무의 『홍길동』

권용상의 반전 공식은 『홍길동』에서도 적용된다. 이 젊은 춤꾼은 비극 속에 희망을, 인생무상 속에서도 알찬 인생을 이야기하는 노련함을 보인다. 과거의 인물을 현재적 모델로 삼아 미래의 희망으로 전개시키는 그는 이 시대의 수많은 숨은 홍길동들의 삶을 존중하면서, 왜곡된 세상을 추종하고 물신화된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서로 얘기해보자며 텍스트 『홍길동』을 심각함에서 탈색시켜 표현했다.

권용상, 충효를 기본 도리로 알고 예의범절에 투철하지만 춤의 현대적 흐름과 기교 연마에는 뒤처지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언제나 웃음을 달고 다니는 그가 자신보다 낳은 반쪽을 찾아 율도로 떠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는 『홍길동』을 제목으로 삼아 부조리한 현실을 빗대는 독창성, 장르 간의 조화, 양선희 교수가 지도한 세종대 무용과 선후배들의 뛰어난 연기로써 작품을 격상시켰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