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碧史)는 제자들을 인격체, 예술인으로 존중하며 그들의 스타일에 맞는 춤을 골라주며 춤추게 한 정(情)많은 교육자로 불린다. 수제자 이미희는 정재만류 허튼춤 계보를 잇는 유일한 제자다. 영상으로 보인 벽사의 춤과 무대 위에서의 이미희 춤의 비교는 흥미, 그 자체였다. 복제품이라 할 만큼 벽사의 춤사위와 발디딤, 연기 등을 보여준 이미희는 벽사의 1주기를 앞둔 2015년 '스승의 날'에 우면당에서 '몸의 기억'으로 스승에게 춤을 헌정한 바 있다.
격년 터울인 공연은 스승과의 춤 연습과 작업을 같이했던 춤이 기본이 된다. 1980년 초연된 벽사의 허튼춤에는 한국무용의 핵심 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제자들의 무리를 상징하는 죽림(竹林)의 춤(최윤정, 김옥경, 이예림, 김도원, 김혜승, 황윤재)을 시작으로 춤의 사군자라 불리는 승무(이미희), 산조(정송이, 김옥경, 이예림, 김도원, 황윤재), 태평무(김미숙), 살풀이춤(전은경) 4가지 죽매란국(竹梅蘭菊)의 춤이 '춤을 대하는 예(禮)'로 1부에 헌무(獻舞)되었다.
춤꾼들 중 전은경과 김미숙은 국립무용단 출신으로 전은경은 삼성무용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안무자를 역임하고 현재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고, 김미숙은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안무자를 거쳐 충청 지역 벽사춤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삼성무용단 수석무용수였던 젊은 춤꾼 정송이도 벽사의 춤정신을 이어 받겠다고 동참했다. 애절한 정성을 춤에 담은 이들은 모두 벽사의 제자들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들이다.
2부 '예(藝)로서 춤'은 탈을 쓴 3인의 해탈(解脫, 최윤정, 김옥경, 김혜승) 과정에 이어 이미희가 허튼춤으로 풀어내는 '정재만의 예술혼' 영상과 함께 허튼살풀이춤을 창작화한 '허튼소리춤'을 재현하여 복원한 이미희의 춤으로 장식한다. 이 춤은 1994년에 정재만 선생이 지금의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추었던 '허튼소리춤'으로, 그녀가 평생 선생님의 춤을 배우고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춤이다. 2015년 첫 번째 공연은 1980년 '허튼춤'을 시작으로 발전하여 1993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된 벽사의 유작 '허튼살풀이춤'을 재현하여 복원한 무대였다.
'허튼춤'은 그 이름에서 보듯 즉흥적인, 변화무쌍한 춤으로 공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정형화된 춤사위를 구사하는 춤이 아니다.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등과 같이 삶의 철학과 인생의 관조 등을 담고 있는 춤이며 빠른 발디딤으로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형식을 지닌다. 서울시남산골한옥마을 남산국악당과 서정춤세상이 공동주최한 이번 무대는 우리 춤의 거목 벽사의 춤맥(脈)을 잇는 수제자들을 통하여 그의 예술혼(藝術魂)을 경험한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이미희, 발로 탈을 깨는 행위처럼 닫힌 세상을 춤으로 열어 상서로운 샘물이 솟게 만들고자 하는 춤꾼이다. 그녀의 춤은 늘 신명과 흥을 불러오는 레시피가 있다. 시공간에 대한 해석, 빛과 음을 조율하는 능력, 미감을 높이는 디테일한 연출 능력은 그녀의 춤이 독창적 범주에 속해 있음을 입증한다. 라이브 음악으로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스승 정재만 선생을 그리는 '회상'은 춤의 동기화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후계자 이미희의 고운 심성을 읽게 해주는 바람직한 교본으로 기능했다.
○이미희(서정춤세상 대표, 예술감독)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한양대 겸임교수, 무용학 박사
무용역사기록학회 상임이사
한국춤협회 이사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이사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운영위원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선정(2012)
제 15회 전국무용제(강원) 최우수상(2011)
국제한국전통춤경연대회 특상(2005)
전국재인춤경연대회 금상(1998)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