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주변 맴도는 '헬리콥터맘'
얼마의 자연스런 마음 알지만
지나친 간섭은 미래 해칠 수도
강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 때문에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켜왔을 뿐만 아니라 유일한 분단국가이면서도 세계가 놀라는 경제 발전을 이룬 이면에는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 희생을 마다않는 부모와 학생들을 자신의 친자식처럼 여기고 모든 헌신과 열정을 쏟아부은 교사의 공이 컸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주역사이의 갈등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몇 년 전 한국 문화의 특성을 다루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서양 특히 미국 문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 ‘아마겟돈’을 비유로 설명하였다. ‘아마겟돈’은 1998년에 개봉된 재난영화로 줄거리는 간단하다. 텍사스 크기의 행성이 시속 2만2000마일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미국 우주항공국(NASA)은 행성에 800피트의 구멍을 뚫어 그 속에 핵탄두를 폭발시켜 행성을 둘로 쪼개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이 역할을 맡을 유정 굴착 전문가들은 두 우주왕복선을 타고 소행성으로 향한다. 이 두 우주왕복선의 이름은 ‘독립(Independence)’과 ‘자유(Freedom)’이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독립과 자유를 꼽는다고 설명하면서 만약 우리나라에서 지구를 지켜야 하니, 우리의 중요한 가치를 상징할 우주선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과제이었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찾아내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름들 중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나와 깜짝 놀랐다. 이 이름을 발표하자 학생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이름은 ‘아빠가 보고 있다’와 ‘엄마가 보고 있다’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이름이려니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재미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막중한 사명을 띤 우주선의 이름에 ‘아빠와 엄마가 보고 있다’라는 이름을 생각한 요즘 대학생들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고, 이들은 앞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살아갈 것인지 마음이 찹찹해졌다.
또 한 번은 학생들에서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계획을 작성해서 발표하도록 하였다. 그 중 몇몇 학생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이들은 “지금까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 것이다”라고 적은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앞날을 설계하는 막중한 시기에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겠다니!
한동안 유행하던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헬리콥터 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만 치맛바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사커맘(soccer mom)’이라는 말이 있다. 사커맘은 아이의 축구 연습을 지켜보고 경기장마다 따라다닐 정도로 열정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어머니들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이 보다 더 자녀들에게 열성적인 ‘헬리콥터 맘’이 생겨났다.
‘헬리콥터 맘’은 자녀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도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엄마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평생을 자녀 주위를 맴돌며 자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발 벗고 나서며 자녀를 과잉보호하려고 한다. 최근의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외국에 유학 가는 미혼의 딸에게 피임수술을 해주는 어머니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미숙한 대처로 원치 않은 임신 등 돌발사태에 대비하기 위함도 있지만, 매달 찾아오는 생리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한 몫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시술을 하는 연령층이 낮아져 요즘에는 청소년들도 있다고 한다.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자연스런 마음이다. 이 마음이 결국 인류의 진화와 진보에 원동력인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이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분신(分身)인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과유부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에 대한 지나친 보호와 간섭이 오히려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의 건강과 미래를 해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진정한 자녀 행복 원한다면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심리적 해산의 고통' 참아내야
자녀는 일생에 두 번 부모 특히 어머니로 분리되어야 한다. 첫째는 신체적인 분리이다.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힘들지만 갓난애는 ‘고고의성(呱呱之聲)’을 지르며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분리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이 과정은 사실 어린이보다 어머니에게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 중에 제일 큰 것이 해산의 고통이다. 하지만 모진 ‘산고(産苦)’를 겪고 새 생명을 세상에 내보낸 어머니는 분리의 과정을 이겨내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를 품에 앉는 순간 그 힘들었던 해산의 고통을 다 잊고 기쁜 마음으로 젖을 물린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분리이다. 이는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이다. 이 시기는 여러 가지 다양한 행동이 나타나지만 그 핵심은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한 자녀들의 심리적 몸부림이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던 부모를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마음은 염려스럽고 안쓰럽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정을 쉽게 보내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참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만 도와주면 금쪽 같이 귀한 자식들이 힘들지 않게 세상을 살아갈 것 같은 마음에 무리를 해서라도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정당화한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자신이 마음이 편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야만 성장하는 것이라면 자녀는 당연히 그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어려울지언정 지켜보는 고통 또한 부모가 참고 견뎌야 한다. 애벌레가 예쁜 나비가 되어 아름답게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누에고치 속에 틀어박혀 형태가 변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 고통이 안쓰럽다고 누에고치 속에서 꺼내주면 결국 나비가 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애벌레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상태에서 멈추고 마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앞으로 살아가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대학생이 있다면 그는 평생을 심리적 애벌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에고치가 되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자기 힘으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나비는 결코 되지 못한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데미안』이라는 작품에서 이 과정을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고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자녀의 어려움을 지켜보는 힘든 자신의 마음을 견디기 어려워서 나온 것인지 숙고해보아야 한다. 첫 번째 해산의 고통을 사랑으로 이겨내듯이 두 번째 심리적 해산의 고통도 자녀를 위해 참아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