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체 성인 중 4분의 1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에 걸려
2016년 470만명 이상 경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WHO)는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병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 상태이다(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도 역시 건강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정의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건강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다. 더불어 WHO는 “좋은 정신건강은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심리적 안녕과 관계가 있다. 개인과 넓게는 사회의 정신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정신적 안녕을 증진시키고,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에 관하여 전국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국가 정신질환 관리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2001년부터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해오고 있다. 이 조사는 2011년부터 5년 주기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데, 2016년에 네 번째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5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금년 4월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생 한번이라도 주요 17개 정신질환(알코올•니코틴 사용장애, 조현병 스펙트럼장애, 기분장애, 불안장애, 약물사용장애 등)을 경험해본 성인은 25.4%에 달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나라 전체 성인 중 4분의 1에 달하는 사람이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린다는 것이다. 성별로는 남성이 28.8%, 여성은 21.9%였다. 지난 1년간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비율(1년 유병률)도 11.9%(남성 12.2%•여성 11.5%)나 됐다. 성인 인구 수로 환산하면, 지난 한 해 동안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 수는 470만 명에 이른다.
과거에는 정신건강을 지키고 치료하는 역할을 종교에서 담당하였다. 필자가 어렸을 때까지도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특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곤 했다. 소위 ‘귀신들린’ 젊은 여성이 무섭게 칼춤을 추고 있는 무당 앞에 끌려나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던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지금도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상담소를 찾기 보단 수도원이나 기도원 또는 사찰을 찾아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해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해 불필요한 도덕적•사회적 낙인을 찍고 있다. 마음의 병도 몸의 병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고,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행동을 한 결과 처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시에 질환을 앓고 있는 개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도 정죄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도움을 받기보다는 남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집안에 가두어두는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아직도 도덕‧사회적 편견 많아
마음의 병도 잘 대처하면 호전
새 정부에서 현실적 교육해야
정신질환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마치 외부에서 ‘사악한’ 뭔가가 들어와 정신이상이 생겼다고 믿는 것이다. ‘귀신 들렸다’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외부에서 귀신이 들어와 정신이상이 생겼으니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환자를 묶어놓고 때리는 등의 치료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한다. 물론 ‘빙의’라고 불리는 툭수한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학과 심리학 등 현대의 학문으로도 아직 인간 마음의 신비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인간 마음의 신비는 영원히 다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귀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크게 기질적인 것과 기능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기질적인 원인은 유전처럼 생물학적이고 신체적인 것을 말한다. 요즘 뇌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크게 발전하고 활성화되면서 정신질환에 관여하는 뇌의 부위와 기능에 대해 과거보다는 훨씬 많은 실증적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방향의 연구와 지식은 앞으로도 놀랄만한 속도록 밝혀지고 축적될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귀신’에 의해 정신질환을 앓는 것이 아니라 뇌에 이상이 생긴 결과라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동시에 정신질환은 기능적인 문제에 기인하기도 한다. 이는 유전이나 뇌처럼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면서 받은 양육의 결과나 개인의 경험 등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가 다른 데서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사람마다 좋아하는 과일이 다른 것은, 뇌의 구조나 기능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먹어본 경험이라든지 특수한 과일에 관련된 개인의 경험에 따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담과 건강한 신앙생활 등이 필요하다.
건전한 신체를 가지기 위해 운동이 필요한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운동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 된 데에는 초등학교부터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체육시간을 마련해 다양한 운동을 가르친 결과이다. 그 결과, 몸이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병이 나면 병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은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귀신’이 들린 특수한 사람만이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정규과목으로 넣어 필수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평상시에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부터 급격히 마음의 건강이 나빠졌을 때 주위에서 해줄 수 있는 응급처치 방법 등을 교육해야 한다.
전 국민의 4분의 1이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게 될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무지(無知)’하고 교육을 안 하는 나라가 단지 경제적인 소득이 높아졌다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는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요란하게 제시하고는 있지만 국민의 마음의 건강을 유지•증진•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빠져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저런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제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정신건강’ 과목부터 교과에 넣어 초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부언하면, WHO는 “건강교육은 개인과 지역사회가, 그들의 지식을 늘리거나 태도에 영향을 줌으로써,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을 돕기 위해 고안된 모든 학습경험들의 조합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