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중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내용이 단계적으로 변한다. 먼저 생후 1년까지의 유아들은 자신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대상의 존재 여부를 자신의 감각 유무와 연결시켜 인식하기 때문에 자아중심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감각 중에서도 시각(視覺)이 유아들의 자아중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유아들은 자기 눈에 보이면 존재하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유아들은 지금까지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수건으로 가리면 잠시 멍하고 있다가 금방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놀던 장난감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언어에서 다른 관점을 상징적으로 ‘다른 시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시기는 다르지만
자아중심성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자연스러운 세상변화 인식 못해
유년기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낀다고 본다. 즉, 자기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 시기에 어린이들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쪽의 손으로 수저를 잡은 것을 보고 바꿔 잡으라고 요구한다. 자신은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데 상대방이 잘못 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와 마주 앉아있는 사람도 사실은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생일 선물을 고를 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른다. 이들은 자기와 어머니는 서로 분리된 존재이고, 나이도 다르고 당연히 취향이 다를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기가 평소 가지고 싶었거나 자기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물건을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고른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년기의 아동들은 자신의 즉각적인 관점 이상은 고려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이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비교적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고 정확한 답을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동들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사고할 수 있고, 그 외의 대상에 대해서는 명확한 추론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시기의 아동들의 세계는 현재의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한정된 세계이다. 당연히 이들은 미래에 닥칠 사건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 이 시기의 아동의 세계는 바로 ‘지금-여기’의 세계다.
청년들은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에서 더 넓은 세계, 즉 가능성의 세계에 들어간다. 이들은 새로 얻은 인지 능력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미래와 그들이 속하게 될 사회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묶어두었던 현실의 세계 너머를 생각하며 이상(理想)적인 사회에 대해 꿈꾸기 시작한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 세계에서 바라보는 현실의 세계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이 많은 사회로 비쳐진다. 당연히 이들은 현실세계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의 사고가 현실 변혁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청년들의 자아중심성은 자신의 사고(思考)에 무한한 힘을 부여하는 데서 나타난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세계의 건설에 방해되는 모든 세력을 적대시한다. ‘흑백논리’가 이들의 특징이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상세계의 건설을 방해하는 ‘타도대상’으로 생각한다.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소유를 내주지 않을 것이므로 ‘혁명(革命)’을 통해 기득권 세력을 타도하고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할 책무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자아중심성 강한 권력집단 위험
집단사고에 빠지고 패거리 형성
남의 관점도 소중한 줄 알아야
청년들은 자신들의 이상이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현될 수 있을지에 따라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현실적인 방법을 만들어내면서 성인이 되어간다. 하지만 성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성취에 지나치게 역점을 두면서 또다시 자아중심성에 빠질 위험에 처한다. 이들은 자신은 온갖 세상사를 다 경험했고, 그 풍파를 성공적으로 헤쳐나왔기 때문에 제일 정확하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자신(自信)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신념에 대해서는,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것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생각이라고 폄하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현재의 모습이 제일 바람직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아중심성은 삶의 어느 발달 단계에서도 일어난다. 비록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어느 시기에 나타나는지 자아중심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동일하다. 첫째는 ‘나’와 ‘너’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아중심성은 ‘나’와 상대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인지적 편향에서 비롯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할 것이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히 너도 옳다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너도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상대가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고, 다른 것을 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아중심성이 강한 사람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익힐 수 없다.
자아중심성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세상만사가 변화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자아중심성이 강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 한다. 따라서 이들은 과거와 다른 현재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라고 보기보다는 ‘변절(變節)’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현재에 이루려고 노력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라도 하루빨리 현실에서 이상향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미래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점진적으로 이상적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결국 현재 이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정당화이고 결국 변화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리더가 자아중심적 경향이 강하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커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고 오직 자신만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영웅 콤플렉스’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설사 다른 생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틀린 생각이기 때문에 구태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을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 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패거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서로서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집단사고’에 빠지게 된다. 이들에게는 이 세상에는 ‘동지’와 ‘적’ 둘 만이 존재한다. 동지들끼리 뭉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전투적 의식’을 불태운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것은 자아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네가 해도 불륜이고 내가 해도 불륜이다. 성숙한 인품은 나이가 든다고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관점도 소중하다고 여기고, 또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자기객관화’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성숙한 개인이 많아질 때 사회는 성숙할 수 있다. 동시에 성숙한 사회는 개인이 성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