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장은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먼저 프로이트가 알고 싶었던 것은 마음의 병이 생기는 원인이었다. 프로이트 당시에는 아직 신체적 건강에 비해 정신적 건강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프로이트는 이론을 먼저 정립하고 치료를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정신병이라고 알려진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점차로 마음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갔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성해방'은
욕구대로 해결하라는 의미와 달라
적절한 대상과 방식이 전제조건
프로이트는 그 당시 널리 받아들여진 생각과는 달리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을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그렇다면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 얼마든지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신병을 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환자들을 소파에 편한 자세로 눕게 한 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야기하게 하는 ‘자유연상’을 통해 그는 정신병을 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을 찾아나갔다.
환자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자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 깊은 곳에 억눌려져 있던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 중에 행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성(性)’과 관련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를 서양 문화사에서는 ‘빅토리아시대’라고 부른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 시대는 영국 역사에서 산업혁명의 경제 발전이 성숙기에 도달하여 대영제국의 절정기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성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억압적인 시대였다. 특히 여성에게는 훨씬 더 엄격한 성적 억압이 강요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정신병 환자들을 진료한 프로이트는 ‘성(性)’에 대한 지나친 억압이 결국 정신병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범성욕설(凡性慾說)’이라고 부른다. 금욕적인 당시 분위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주장을 한 결과 프로이트는 절친하던 선배와 동료들에게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변태성욕자’라는 수치스러운 오명을 쓰며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과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프로이트는 자신의 꿈을 스스로 분석한 내용을 통해 억압된 무의식과 행동과의 관계를 밝힌 불후의 명작인 『끔의 해석』을 1900년에 출판한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의사로서 병의 치료에 헌신했던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욕망을 억압한 결과 마음의 병이 생긴다면 당연히 성적 욕망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했고, 그 길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왕도(王道)’였다.
무의식에 갇혀 있는 인간 성욕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영향 줘
욕구 잘 해결해야 마음도 건강
지금까지 간단하게 살펴본 내용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성을 해방하는 것이 마음 건강에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 맞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성해방(性解放)’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 때 유행하던 “본능에 충실해라”라는 말처럼, 일반적으로 성욕을 억압하는 대신 욕구를 느끼면 성행동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이 만족하는 것이 성해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모든 사람이 성욕이 일어나는 즉시 만족하기 위한 성행동을 한다면 가족이나 조직, 그리고 사회는 존립할 수조차 없다. 성욕뿐만 아니라 모든 본능을 즉각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인류 자체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만민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생존 자체를 영위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양심(良心)’ 즉 초자아가 있다. 양심은 일반적으로 한 사회나 조직의 행동규범, 즉 도덕이나 윤리가 ‘내재화(內在化)’ 된 것이다.
양심의 유무에 따라 인간과 동물이 구별된다. 동물의 세계에는 양심이 없다. 어미가 새끼를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다. 동물의 어미도 새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다. 하지만 이 행동은 양심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행동이다. 우리는 본능에 이끌린 동물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물에게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양심의 판단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본능에 의한 행동을 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로부터 비난과 처벌을 받는다. 사회는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해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반(反)사회적 행동을 처벌한다. 국가 공권력이 동원되는 법적 처벌에서부터 사회나 동료들에 의해 훨씬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따돌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처벌한다. 양심은 내재화된 사회적 규범이기 때문에 설사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사회적 처벌을 피할 수는 있다고 해도 자신의 양심은 속일 수 없다. 즉,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죄책감은 심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스스로 처벌하게 만들기도 한다.
본능은 만족되어야만 한다. 본능은 배운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행동의 경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신이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욕구가 만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욕구 만족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격려하고 조장한다. 예를 들면, 결혼을 권하고 출산을 장려한다.
부부간의 성행위를 방해하는 외부의 침입은 ‘가정파괴범’이라고 처벌하면서 사회가 지켜주기까지 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것은,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지만 그 방법은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사회가 인정하는 부부간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시기와 방법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성욕은 오직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적절한 대상과 방식으로’ 만족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프로이트가 성욕을 최대한 만족하는 것이 성해방이라고 주장하고 조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프로이트를 오히려 지나친 ‘도덕주의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을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성욕을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억압한다. 그 결과, 자신의 성욕은 의식되지 못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무의식에 갇혀 있는 성욕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에 나타나고 영향을 준다. 둑이 터지면 그 안에 있던 물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흘러나오듯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무의식에 갇혀 있던 욕구들이 거세게 분출되면서 이성(理性)이 통제할 수 없는 거친 행동으로 나타난다.
‘무의식의 의식화’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마음건강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이 성숙한 삶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